여행과 여행 사이 by 현경

여행과 여행 사이

윤대녕피에로의 집문학동네, 2016 -

 

문학평론가 황현경

 

평생을 하나의 이야기만 붙들고 쓰는 작가들이 있다아니이 문장은 피동으로 고쳐야 한다평생 하나의 이야기를 쓰게끔 운명지어진 작가들이 있다윤대녕이 바로 그런 작가이며그에게는 여행이 단 하나의 주제다.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남진우)를 꾀한 1994년의 은어낚시통신에서부터 그랬다그때 그는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떠났다생이 너무도 지리멸렬하여 그곳에서는 삶을 살 수조차 없으니 존재는 다른 곳에 있는 것 아니겠냐는 절박한 믿음 때문이었다그 길었던 여정이 눈에 띄게 짧아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상재한 네 번째 단편집 제비를 기르다무렵이었다삶과 죽음의 명암이 유례없이 선명하게 드러난 그 소설들을 통해 말해진 것은 결국 출발한 그곳으로 다시 돌아오는 것까지가 여행이라는 평범한 진실이었으되떠나본 이가 아니라면 절대로 알지 못할 것이기에 그 진정성만큼은 조금도 의심할 수 없었다그렇게 ()과 속()이 분별될 수 있다는 미망”(신형철)을 차곡차곡 접고 나니 무엇이 남았던가생이 있는 그곳에서 어떻게든 살아내는 일만이 남았다생을 사는 일이 곧 삶을 사는 일과 다르지 않다는 것, 2013년의도자기 박물관이 말하는 바다멀리 둘러 여기까지 일단 왔다.

피에로들의 집(문학동네, 2016)은 그런 윤대녕이 호랑이는 왜 바다로 갔나』 이후 십일 년 만에 내놓은 장편 소설이다삼십 대 후반의 주인공 김명우는 연극배우로서도 극작가로서도 완전히 실패했으며그 과정 중에 연인이었던 송난희마저도 놓쳐버렸다그렇게 재기불능이 되어 알코올에 의존한 채 살아가던 그에게 아몬드나무 하우스라는 북카페의 주인 남희정이 손을 내민다.삶의 길을 잃고 헤매는 이들을 제집에 거두어 그들 사이에서 마마로 불리던 그녀가 집 일 층 카페의 운영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전해온 것명우가 제안을 수락하며 시작된 마마와의 짧은 인연은 그녀의 노환으로 인한 죽음으로 끝을 맺는다그 결말에 이르러 밝혀지는바 아몬드나무 하우스는 복잡한 가정사로 인해 훼손된 제 삶에 대한 터무니없는 연민과 세상에 대한 밑도 끝도 없는 복수심”(222)을 불태우며 한때 악착같이 살던 그녀가 그 삶에 스스로 용서를 빌듯 꾸린 보금자리였다거기 모인 김현주박윤정김윤태정민의 면면 또한 출생의 비밀실패한 결혼부모의 이혼과 연인의 죽음부모의 불화 등 상처로 얼룩져 있다요컨대 그들은 슬픔에 찌든 피에로”(48)처럼 아픔을 감춘 채 삶을 연기(演技)해 왔다.

작가 스스로 가족 공동체의 해체를 비롯해 삶의 기반을 상실한 채 실제적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유사 가족의 형태와 그 연대의 가능성을 모색해보고 싶었다”(‘작가의 말’, 247)고 밝혔듯이야기는 그들이 저마다의 훼손된 삶을 다시 어루만지게 되는 것으로 맺어진다.그 과정에서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할 것은 그들이 나눈 수많은 말들이다제 과거를 명우에게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놓은 윤정의 경우를 제외하면다른 이들의 사연은 또 다른 이의 입을 통해 명우에게 전해진다말하자면 제 상처를 고백하고 서로 위로를 나누는 식의 관계가 아니라는 것이다.어째서일까결국 제 삶은 저 스스로 추슬러야 하는 것이며그를 위해서는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저 자신이 되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서로 교감하는 순간들이 찾아왔다 사라져가, “이제부터는 자신에게 의지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210~211그래서인지 명우는 윤정을 통해 들은 현주의 출생의 비밀을 마마에게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현주에게 전하지는 않는다그 이야기가 그에 얽힌 두 사람 곧 현주와 마마 사이에서 오갈 수 있도록 그대로 놓아두는 것이다서로 간의 이러한 거리가 그들로 하여금 아픈 과거를 털어내고 지금의 제 삶으로아니 생으로 돌아가게끔 한다같이그러나 따로이것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피에로들의 집의 작가 윤대녕은 출발점이던 은어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물론 읽는 이를 기어이 설득하고야 마는 문장도 그의 것이고어느 순간부턴가 생의 허기에 대한 증거로 제시되어 온 음식들도 그의 것이며한참을 떠돌다 이제 막 갈 길을 짚기 시작하는 인물들도 그의 것이다그러나 그의 작품에서 사람은 고통스러울수록 함께 있어야 하는 거”(96)라든지 절대적인 자아라는 것도 존재하지 않으며 다만 관계라는 게 존재할 뿐”(108)이라든지 하는 말이 이토록 또렷했던 적이 있었던가그뿐만이 아니다어느 날 술자리를 청한 윤태의 이런 말. “기성세대라고 하는 사람들이 때로 무차별적으로 힘을 행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147그리고 명우의 이런 대답. “우리 사회는 이제 타인에 대한 태도가 적대감을 넘어 학대하는 지경에 이르렀어.”(150이와 함께 장자연 리스트나 세월호 사건을 직격하고 있는 듯한 장면들까지흡사 90년대 윤대녕의 여행에 날을 세웠던 이들이 바라마지 않던 것들이 뒤늦게 나타난 것처럼도 보인다.

시대가 변한 탓이기도 할 것이며그가 변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그러고 보면 우리는 윤대녕을 통해 90년대 곧 80년대 이후를 살아가는 법을 배웠고, 2000년대 곧 90년대 이후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지 않았던가그러면서 동시에 우리는 이십 대 이후를삼십 대 이후를 살아가는 법도 배웠는지 모른다배우며 또한 위로받기도 하였으니그래서 우리는 윤대녕을 읽었는가 보다말은 쉽지만 이런 경험을 가능하게 해주는 작가들이 그렇게 흔하지만은 않다진정한 무언가는 생 너머 저편에 있다고 믿었던 이전의 그는 없고여기저기 다 떠돌아본 후 차마 뒤로할 수 없는 생의 현장으로 돌아온 지금의 그가 우리와 함께 2016년의 여기를 산다머물 수 없어 떠났던 이가 떠날 수 없어 머문다그러니 지난 윤대녕을 그리며 아쉬워할 건 없겠다늘 그랬듯여기서 어떻게든 살아가는 법을 그로부터 배우게 될 테니까그리고 늘 그랬듯생이 조금이라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는 언제든 또 떠날 테고언제나처럼 다시 돌아올 테니까.


「여행과 여행 사이 - 윤대녕, 『피에로의 집』」

『기획회의』, 2016.03.20, 95-9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