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나 그리고 나 by 현경

나 그리고 나 그리고 나

권여선론 -

 

문학평론가 황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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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여선이 어떤 작가였는지는 데뷔작 푸르른 틈새(살림, 1996)를 몇 장만 넘겨봐도 금방 알 수 있다. ‘가 일주일 후면 떠나게 될 제 반지하방을 소개하던 그 대목에서 한 문장만 옮겨보자면 이렇다. “내가 밤늦게까지 컴퓨터 앞에 붙어 있으면 술을 먹고 싶어하는 또하나의 나는 초조한 듯이 방을 서성이곤 한다.”(23컴퓨터 앞에 앉은 내가 있고 술이 고파 서성이는 내가 있다은 가 싫고 는 이 싫은데우격다짐으로 승부를 가릴 만큼 싫은 건 아니고 그런다고 누가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사실 꼭 누가 이겨야 하는 것도 아니어서 새침하게 서로 눈만 흘기는 사이다.둘을 뭐라 부를까외면과 내면행위와 욕구여하간 돌이켜보면 내가 좋은 소설로 여겼던 것들에서 과 는 늘 새침한 사이였다둘이 격렬하게 싸우거나그러다 둘 중 하나가 완승하거나아니면 애초에 둘이 하나이거나 둘 중 하나가 없는그런 소설은 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말이다.

과 의 신경전을 구경하다보면 놓치기 쉽지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한 명이 분명히 더 있다.제 방을 소개한다며 그 무대’ 위에 과 를 올려놓고는 멀찍이서 바라보는 연출가셋을 다 소개했으니 어떤 이름을 붙여줄지 다시 고민해볼까푸르른 틈새는 일인칭 소설인지라 셋은 생판 다른 사람도 아니니 과감하게 인물 화자 작가라고 불러보면 어떨까일인칭 소설에서 한 사람이면서도 두 사람인 게 인물과 화자고권여선 소설에서 작가는 거기 없는 척을 아주 천연덕스럽게 잘하곤 했으니까다시금 돌이켜보면 나는 이 무대에 너무 자주 올라오면 좋은 소설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권여선의 은 인 척을 워낙 잘해서 올라와도 좀처럼 티가 안 났다아니,그렇게 모르는 사이 자주 들락날락하는 의 존재야말로 권여선 소설 미학의 핵심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정리하자면 내게는 딱 권여선 소설 같은 게 좋은 소설이다그런데 권여선의 소설은 다 권여선 소설이므로나는 권여선 소설이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이 엉터리 순환논증이 내게는 조금도 이상하지가 않다아껴가며 거듭 읽었고매번 설득되었으며자주 감탄했다나라고 뭐 소설의 정석’ 같은 것으로 소설을 배웠겠는가어떤 소설이 마음을 자꾸 건드리나 하다가 보니까 권여선 소설이 자주 그러더라왜 그런가 하다가 보니까 저래서 그런 것 같더라그러면서 더듬더듬 배웠을 따름과 가 저렇듯 팽팽하며 이 저렇듯 영특한 이상 무슨 이야기든 좀체 실패한 소설이 되기 어렵지 않나좋으니까 좋다는 말을 복잡하게 하고 있는 것도 같으니 각설하고 3이라는 숫자 하나만 기억하도록 하자그나저나 권여선 소설로부터 배운 것으로 권여선 소설을 설명하려니 이게 글이 되려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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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설집 처녀치마(이룸, 2004)에서 12월 31다음 분홍 리본의 시절(창비, 2007)에서 가을이 오면다음 내 정원의 붉은 열매(문학동네, 2010)에서 사랑을 믿다이 셋이 각각의 소설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들이다셋 모두 연애소설인데가을이 오면만 빼면 나머지 둘은 많이 닮았다요컨대 연애에 관한 후일담’, 곧 나중에 돌아보며 풀어놓는 이야기들이라는 것.


처녀치마에 달린 이수형의 해설(스토아주의자의 치유법)은 소설 속 인물들이 운동의 경험이 있는 386세대임을 지적하는 것을 시작으로 후일담 소설과 권여선 소설의 차별점을 짚으려 애쓴다후일담 소설에 대한 경직된 규정이 느슨해진 시절이기도 했고, ‘불의 시대의 온기가 거의 사라졌으나 아직은 조금 남아 있던 시절이기도 했으니 이런 독해가 긴요했으리라참고하며 말하자면 이 무렵 권여선 소설은 과연 권여선식 후일담이라는 특별한 명명을 요구하는 것들이다.운동의 활력과 확신 이면에 개인의 무기력과 회의가 공존했음을 꿰뚫어보고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들은 운동사의 틈새를 메울 감정사의 중요한 자료로 취급해 마땅하다개인으로서의 인물,당대의 사회운동그것을 회상하는 후일의 시점(時點사이의 긴장으로 말미암은 성과라는 것만 언급하고 넘어가자.

이러한 맥락에서 보자면 영준과 혜원의 시시껄렁한 ’ 이야기라고밖에 요약할 수 없는 1231은 확실히 독특한 작품이다이 소설에서 화자인 영준의 시간대는 크게 셋으로 나뉜다스물에 만난 혜원에게 몇 년간 미지근한 구애를 했던 시기불현듯 걸려온 혜원의 전화로부터 시작된 서른 전야마흔을 하루 앞두고 과거를 회상하는 지금에서 어쩌면 내가 지레짐작으로 그녀가 그어놓았다고 상상한 건지도 모르는 그 아슬아슬하고 지워지기 쉬운 페인트 자국”(99)을 한 번도 넘어본 적 없었던 영준은 에서도 혜원의 손에 이리저리 끌려다닌다차이가 있다면 에서 이미 결혼해 아이까지 둘 있는 혜원이 영준과 함께 을 넘는다는 것같이 술집을 찾아다니던 중 무단횡단을 하다 적발되기도 했던 그날급히 몸을 섞은 둘은 아마도 마지막이 될 이별을 한다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으니 대가를 치를 차례여관방 침대에서 함께 서른을 맞던 그날 혜원의 아이에게 선물하려다 무심코 들고 온 유아용 그림책이 담긴 종이봉투를 열었다 닫는 것이 에서 영준이 하는 일이다. “이 종이봉투를 열 때면”(87)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에서부터 알 수 있는바 영준에게 그날의 기억은 거듭 돌이키지 않을 수 없는 것. “이제는 아프지 않다.”(121)라고 반어법으로 쓰인 마지막 문장에서 느껴지는 회한이야말로 영준이 지난 십 년간 분납해온 벌금이다.

사랑을 믿다의 시간대도 크게 셋이다시간순으로 맨 끝인 은 단골 술집에 앉아 삼 년 전 하루 만났다 헤어진 그녀를 생각하는 서른다섯 의 시점소설의 주된 시간대인 는 이런 것. “삼 년 전 내가 한 여자로부터 실연을 당했을 즈음의 얘기이며그녀를 한동안 못 보고 지내다 삼 년 만에 만났을 때의 얘기이다삼층짜리 건물에 얽힌 얘기기도 하니삼박자가 딱 들어맞는 얘기다.”(49은 로부터 다시 삼 년 전, “들릴 듯 말 듯한 작고 희미한 멜로디로 전한 그녀의 사랑노래”(78)를 듣지 못했던 시절여러 시간대의 여러 이야기가 복잡하게 얽힌 이 소설의 골조만 추려보자면 이렇다의 는 에서 그녀의 실연과 그 극복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것을 떠올리며 ② 무렵 겪었던 제 실연을 이해하게 되고그 결과 에서 에게 닿지 못한 그녀의 마음과 그 마음을 놓쳐버린 까지 이해하게 된다막상 소설은 희미하게 연결되기도 속절없이 엇갈리기도 했던 둘의 미묘한 관계를 보여주는 데 집중하는 듯 보이지만그 이면에서는 현재의 가 과거의 들을 이해하는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12월 31은 생생한 대화의 묘를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이는 역시 행동하는 인물과 사유하는 화자의 명확한 구분에 힘입어 가능해진다유독 권여선의 대사들은 일상어에 가깝다는 느낌을 주는 경우가 많은데이는 작가가 하나이면서 둘인 과 를 얼마만큼 구분해서 썼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가 정보나 사유를 많이 담당하면 할수록 은 자유로워진다요컨대 수다스러운 화자의 존재가 소격효과를 일으키지 않는소설에서만 가능한 형태의 대화가 있다는 말이고이걸 권여선이 분명히 알고 있다는 말이다사랑을 믿다의 묘는 내면 묘사를 통해 펼쳐지는 수준 높은 사유에 있다이는 역시 행위와 욕구가 반드시 일치할 수만은 없음을아니 대개는 일치하지 않으며 바로 그 괴리가 인간이라는 병증의 핵심임을 꿰뚫어보는 화자인 척하는 작가에 힘입어 가능해진다이미 푸르른 틈새에서부터 권여선 소설의 인장이라 할 수 있는 이러한 사유 또한 마찬가지 이유로 지극히 소설적인 것이다사유를 담기에 영화를 비롯한 다른 매체가 적절하지 않다는 말은 아닌데오해의 소지가 있다면 그냥 작가의 말을 직접 들어보자. “내면의 서사내면의 디테일을 문자만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여전히 소설의 매력인 것 같다.” 하나 더? “천재지변이나 비극적인 전쟁 없이도연애 자체는사랑에 빠진 인간의 정신 속에서만은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한다.” 과연 그렇다.

그저 잘 쓴 소설인지라 속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이야기이긴 한데그렇다고 의문이 남지 않는 것은 아니다가령 12월 31의 영준이나 사랑을 믿다의 ’ 같은 이와 함께 현실에서 술잔을 기울인다고 치면 어떨까그들의 이야기를 마냥 편하게만 들을 수 있을까따지고 보면 줄곧 이런 식인데도 얌전히 속아줄 수 있을까?


그녀가 낮게 비명을 질렀다취기가 오른 그녀는 아름다웠다여전히 미소를 띠운 채였지만 슬프게도 그녀는 나와 더불어 오래 있고 싶은 마음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를 더 유혹해야 하는지 아니면 이쯤에서 그만 그녀의 고집에 진 척하고 섭섭한 얼굴로 놓아주어야 하는지 나는 결정짓지 못했다.(처녀치마, 114)


그녀는 일곱시를 가리키는 시곗바늘의 각도처럼 편안해 보였다그녀가 편안하다면 나로서도 반가운 일이었다그러나 이제 그녀는 누구를 만나도 가슴이 설레지 않는 것이다그리고 누가 자신에게 가슴이 설레길 원하지도 않는 것이다그녀는 사랑의 고통으로부터 너무 먼 어딘가로 초월해버린 것 같았다그녀는 훨씬 더 관대하고 자연스러워졌지만 더이상 사랑을 믿지는 않는 것 같았다이런 생각은 나를 슬프게 했다.(사랑을 믿다, 77)


둘 모두에서 화자는 그녀를 관찰하고 판단한다물론 다분히 자의적으로이는 우리가 (대개는 술자리에서자주 접하는 발화 방식인바소설적으로 말해보자면 회상의 함정이기도 하다기본적으로 소설의 독자는 화자를 신뢰할 수밖에 없는데화자가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전하는 데에만 충실하다면 별다른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그러나 권여선의 회상하는 화자는 일단 지나간 순간 하나하나에 명확한 입장이 있는데다가최종적으로는 화자인 척하는 작가의 손바닥 위에 있다.다시 말해 권여선 소설의 화자의 논평은위에서 보듯 결코 공정하다고는 할 수 없을 때라도전하지 못한 종이봉투를 거듭 여닫는 윤리적 태도에 기대거나(12월 31) “사랑이 보잘것없다면 위로도 보잘것없어야 마땅하다그 보잘것없음이 우리를 바꾼다.”(사랑을 믿다, 80)라는 식의 통찰적 사유에 기대어요컨대 에 기대어 그 정당성을 확보하곤 했다는 것이다무슨 중대한 결함이 있다는 말은 아니다다만 작가가 이 인장 자체를 언젠가는 고민하게 되리라는 말이다권여선이 괜히 권여선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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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두었던 가을이 오면을 이쯤에서이 소설은 읽을 때마다 놀라는데기억 속에 남아 있는 내용이 소설의 일부아니 한 장면에 불과하다는 것을 매번 새로이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여름의 절정시장통에서 실신한 그녀를 업고 병원에 데려다준 남자가 그녀의 옥탑방에 찾아와 김치볶음밥을 만들어 나눠 먹는 바로 그 장면남자에 대한 호감이 대단히 잘생긴 외모”(19)와 무관하지 않음을 애써 숨기지 않는 깜찍함도 인상적이지만완성된 김치볶음밥을 그릇에 덜지 않고 통째 놓은 채 국 대신 수돗물 한 그릇 떠놓고 먹는 장면이 워낙에 강렬해 다른 이야기는 다 잊어버리게 된다권여선 소설에 술이든 밥이든 뭘 먹는 장면이 수도 없이 나온다는 것은 다 알 터혼자 먹을 때는 생의 연료(밥도 밥이지만 술이 없으면 말 그대로 살 수가 없는’ 이들이 있다)일 뿐인 그것이 함께 먹을 때는 서로 간의 거리를 단숨에 좁히는 마법을 부리기도 한다는 것을 이런 장면들이 보여준다그럴 때 먹는 행위는 속되고 속된 생의 전제이면서동시에 몸이 아닌 마음을 불리는 것이기도 하다나는 권여선 소설이 특유의 관념성에도 불구하고 현실성을 조금도정말 조금도 놓치지 않는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가을이 오면의 실체는 아비 없이 자라오다 한 남자에게 덜컥 반해버린 그녀그녀에게 로라라는 조롱적일 만큼 낭만적인 명명”(27)을 한 장본인이자 그녀가 데려간 남자 앞에서 우아와 인내와 헌신을 태연스레 연기하는 이인 어머니이 둘(그녀-어머니혹은 셋(그녀-어머니-아버지(남자)) 사이의 갈등이다이 변형된 오이디푸스 모티프는 푸르른 틈새에서뿐 아니라 두 번째 장편 레가토(창비, 2012)와 세 번째 장편 토우의 집(자음과모음, 2014) 등 여러 작품에서 확인되는데그 절정은 문학동네』 2008년 여름호에 자전소설로 발표되었다가 내 정원의 붉은 열매에 수록된 K가의 사람들이다비슷한 세대 작가들의 아비 되기’ 혹은 비슷한 시대 작가들의 아비 없이 아비 되기와 비교하며 권여선만의 새로운 명제를 만들어볼 수도 있겠고그를 통해 90년대에 데뷔해 2000년대를 통과한 권여선에게 걸맞은 자리를 문학사 안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그런 고된 작업을 이 글에서 하고 싶지는 않다무엇보다도 이런 대목을 보라평론가가 할 일을 작가가 미리 다 해버리면 뭐라 말을 보태기가 영 궁색한 법이다.


K의 큰딸이 어머니로부터 지배의 권능을 배우고자 했다면, K의 둘째딸은 언젠가 되찾게 될 친어머니의 환상을 통해 현재의 노예 상태를 인내하고자 했다그리고 나, K의 막내딸은 어머니로부터 서비스권을K를 시중들 독점적 자격을 조금이나마 나눠받고자 했다간단히 말해 K의 큰딸이 K의 아내가 되고자 했다면, K의 둘째딸은 아닌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려 했고나는 K의 첩이 되고자 했다.(K가의 사람들, 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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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다 좋은 작품들이라는 식으로 말하고는 있지만권여선의 단 한 권의 책은 역시 비자나무 숲(문학과지성사, 2013). (안녕 주정뱅이(창비, 2016)가 나왔으니 과거형으로 써야 한다.) 두루 다 좋은 작품들인 가운데 백미는 역시 끝내 가보지 못한 비자나무 숲(이하 비자나무 숲)이다그게 왜 좋은 소설인지를 말하기 위해서는 잠시 돌아와야 한다레가토를 읽을 차례라는 말이다.

 

괜히 심술궂게 말하자면 권여선의 세 장편은 다 뒤가 좀 바쁘다푸르른 틈새에서 아버지의 죽음에서부터 의 자해로 이어지는 부분이나토우의 집에서 인혁당 사건이 벌어지는 대목 등이 그렇다토우의 집의 경우 암시를 제법 깔아놓았다고는 하지만이 사건들이 소설의 마지막 즈음에 미리 가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벌어진다는 점은 공통으로 지적할 수 있는 문제다이러한 맥락에서 (안 좋은 쪽으로두드러지는 작품은 단연 레가토주인공 정연이 5·18에 휘말린다는 전개그러자 갑자기 등장하는 에르베 리샤르라는 조력자그의 도움으로 정연이 프랑스에서 기억을 잃은 채 살고 있었다는 결말까지소위 개연성을 문제 삼을 만한 지점들이 뒤쪽에 다 몰려 있다개연성이 떨어진다는 말은 쉽지만 어째서인지는 더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이런 문장들이 도움이 될까. “일은 준비 없이 저질러진다고그녀는 늘 느꼈다그러나 되짚어보면 일은 꼭 그렇게 저질러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전구 속 필라멘트가 찰나에 끊어지듯 갑작스럽지만 언젠가는 일어날 일이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두리번거린다처녀치마, 132)

일단 이런 이야기가 가능하겠다레가토나 토우의 집의 모티프인 5·18과 인혁당 사건이 말 그대로 말이 안 되는’ 사건이라는 것실제 사건에 개연성이라는 게 도무지 없으니 허구라는 형태를 통해서도 그 개연성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그런데 조금 더 들어가자면 이는 결국 과거와 현재그리고 인과의 문제다일인칭 화자에게는 명시적으로삼인칭 화자에게는 암시적으로사건을 다 통과하고 난 후 되짚어보는 시간대곧 화자의 현재가 존재한다그 시점에서 화자는 현재를 결과로 놓고 그 원인으로서의 과거를 재구성하는바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가능하지 않을까과연 과거가 먼저이고 현재가 나중인가과거는 그것을 떠올리는 현재의 누군가가 먼저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것 아닌가어쩌면 서사’ 그 자체의 본질에 대한 질문일 이것을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작가가 있고묻지 않고는 넘어갈 수 없는 작가가 있다전자가 게으르다는 말은 아니지만 분명 권여선은 후자이며이유는 이미 말했다지나간 일 중 뭐 하나라도 그 의미를 끝까지 캐묻지 않고는 넘길 수 없는 작가-화자는그런 식으로 현재에서 과거를 재구성하는 행위인 기억을 제 인장으로 삼아온 작가는언젠가는 반드시 이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레가토를 쓰며 이 질문을 인식한 것인지 혹은 인과의 사슬을 끊어진 그대로 내보이는 방식으로 대답을 제시한 것인지까지는 알 수 없다다만 비자나무 숲은 확실히 대답이다.


비자나무 숲에서도 시간대는 셋이다화자인 명이의 애인이었던 정우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 년 반 전명이정우의 동생 도우정우의 어머니가 함께 제주도의 비자림을 찾아가는 지금비자림에 도착하거나 도착하지 못할 미래이 셋의 관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 대목이 둘 있다.


사실 둘이 별로 어울리지도 않았잖아요?”

나는 조금 놀라고 화가 나서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해요?”

도우는 말없이 맥주캔을 자근자근 우그러뜨리고 있었다.

말해요.”

……

얘기해보라니까요!”

도우가 맥주캔을 확 우그러뜨리며 소리쳤다.

안 해안 할 거야나 진짜 화났어.”(111~112)


근데 네 형은아버지가 일부러 자기 골탕 먹이려고 그런 버스 빌려왔다고…… 구 사장이 좀 낡고 더러운 시외버스를 내줬던가 봐형이 삐져서는이런 버스로 교수님들 모시고 창피하게 어떻게 다니느냐고.”

도우가 핸들을 두드리면서 웃었다나도 웃었고 어머니도 웃었다점점이 깃털처럼 흩어진 구름 사이로 햇살이 분말처럼 반짝였다.(116)


우선 첫 장면도우는 왜 화가 났는가아니질문부터 틀렸다화난 것이 아니라 화났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고그렇다면 그렇게밖에 말 못할 그 마음이 무엇인지를 물어야 한다무얼까무슨 꿈인가를 꾸었다던 어머니의 소식을 도우로부터 듣고그다음 날로 제주도에 내려와 기껏 갈칫국을 먹네 마네 하며 식당에 모여 앉은 이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정우 때문이다정우막상 모여서는 그 이름조차 부르지 못하고 있을 뿐도우와 명이가 대화를 나누는 저 장면은 정우의 존재가 비로소 언급되는 첫 장면이다차마 말 못해 머뭇거리다 무심코 형의 존재를 입에 올렸으니 그 마음이 오죽할까.

다음 장면정우가 대학 시절 제주도로 답사여행을 왔을 때 저런 일이 있었다던 이야기가 뭐 그리 우스운가꼼꼼히 살피면여기 이르기까지가 또 둘로 나뉜다는 걸 알 수 있다앞선 장면에서 가장 먼저 형의 존재를 언급했던 도우로부터 다시 꺼내진 형 이야기에 명이가 웃는 것이 첫째, “명이 넌 그 얘기가 그렇게나 재미있니?”(114)라고 묻던 어머니가 저런 이야기를 보태자 셋이 함께 웃게 되는 것이 둘째이 년 반 전 의 시간대에서 벌어진 일을 입에 올리기엔 아파서그저 정우라는 이름을 함께 부르고 싶어서그런데도 그 이름을 단 한 번 시원히 부르지도 못한 채 나누는 말들이며그를 통해 웃음이 차례로 번져가는 장면이다울지 못해 웃는다 하여차라리 울음을 웃는다 하여 이를 애도라 부르지 않을 까닭은 없다애도이므로또한 그것은 결코 완성될 수 없다해설(양윤의사랑의 기하학)에서 지적되었듯 이들이 향하는 비자림(榧子林)에는 비()자와 잎 모양새가 닮아 이름 붙여진 나무들이 있다아닌 나무도착한들 아닌 나무의 숲일 뿐이라면가도 아니 가는 것과 같다면아니 가도 가는 것과 같지 않을까결말에서 실제인 듯 환각인 듯 애매하게 처리된 사고의 진실이 이것이다이제는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정우울음 웃어도 끝나지 않는 애도.

기묘한 방식이긴 하나 그 진실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또한 그것이 지금 여기 모인 이들이 할 수 있는 최대치라는 것도 명백하다그런데도 남는 의문은 이것이들은 왜 의 시간대를 언급 안/못 하는가아파서일 거라고 적었지만 충분치 않다소설에서도 사고”(111)라고밖에 언급되지 않는 그 일이 이해하려 해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일 테다의 인물도 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하려 하지 않고의 시점에서 이야기 전체를 정리해주는 작가-화자도 없으니우리로서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영영 알 수 없다혹여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어찌어찌 알게 된다고 한들 그 일이 왜 일어났는지까지는 끝내 알 수 없으리라. “되짚어보면 일은 꼭 그렇게 저질러지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했던가이걸 알기에 이들은 아예 되짚기를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뒤를 돌아보면 일어났던 일들은 다 현재에 줄줄이 연결되며 필연이 된다그렇게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고 나면 이해가 아니라 오해만 남는다알기에 이들은 과거를 놓아버린다그러자 이들의 시간이영원히 미완성일 애도처럼하염없이 현재를 맴돈다이렇듯 삶이 더는서사가 아닌 이들이, “과거는 현재를 비추고 현재는 과거의 빛을 움켜쥔다”(푸르른 틈새, 191)던 그때로부터 멀어진 이들이 비자나무 숲에는 수두룩한바안녕 주정뱅이의 뿌리가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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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시간을 다루는 예술이다이를 의심하지 않는 이는 과거-현재-미래가 하나의 일직선 위에 놓인 세 점이라고 믿는 것일 터그런 이에게 삶은 서사가 맞을 것이다권여선에게 그걸 믿던 시절이 있었음을 보았고그걸 의심하기 시작했음을 보았다다시금 말하건대 나는 권여선 소설을 통해 소설을 배웠다이제 그렇게 배운 것들로 안녕 주정뱅이라는 아름다운 책을 이야기할 때다.


먼저 인태와 예연의 만남에서 이별과 그 이후까지를 보면 아주 사소한 우연들이 종내에는 얼마나 강력한 필연으로 연결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그런데 얄궂게도 소설은 이들이 태생부터 서로의 짝이 될 수 없음도 함께 보여준다요컨대 어떤 사소한 우연 하나가 틀어져도 이들은 결국 헤어지게 되어 있었다는 것그러니 내 탓은 아니다도 맞고, ‘내가 무슨 도움이 되겠냐도 맞다운명이라는 불가해한 존재가 작정하고 장난을 치는 판에 누가 누굴 탓하며 누가 누굴 돕겠나그저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아니그저 그렇게 살 수밖에포기하지 못하는 자가 어떻게 되는지는 카메라와 실내화 한 켤레가 보여준다내용을 소개할 것도 없이 한 대목씩만 옮길 참인데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도 아니고 과외금지 조치 때문도 아니라는 말만으로도 무슨 소설인지에 대한 설명은 충분할 것 같다현재와 과거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뒤집혀 있는 대목이며이해하려 할수록 점점 더 이해할 수 없게 되는 일들에 관한 서술이다운명과 싸워보려던 인간이 어떻게 병드는지 보라.


그 일은 어쩌면 10년 전에 지자체의 책임자가 그 길을 다시 포장하면서 아스팔트 대신 돌길을 깔기로 결정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하지만 그보다는, 2년 전에 문정이 관주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고 말했기 때문일 가능성이 더 크다.(카메라, 110)


아마 당시에 과외가 허용되었다면 혜련이 경안에게 그런 부탁을 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아니그랬다면 산도적이 그들의 학교에 부임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이 서른두살에 다시 만나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그러니 이 모든 일은 과외금지 조치 때문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실내화 한켤레, 193)


삼인행은 규와 주란 부부의 이별여행에 훈이 동행하는 이야기다이들은 황기삼계탕을 먹겠다며 25킬로미터를 우회하고밤에 맥주와 먹을 햄버거를 사러 22킬로미터를 우회한다말싸움을 위한 말싸움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이 소설에서 그 텅 빈 대화의 진실을 찾아보는 것은 하나 마나 한 일이다애초부터 그 여정 자체가 무의미한 것이었으니까그런데도 이들은 왜 떠났고 왜 우회하며 왜 먹고 마시며 싸우는가답은 이렇다소설의 서두에서 십 분쯤 늦겠다는 부부를 기다리던 훈은 세로로 두개의 평행선이 비스듬히 그어져 있고왼쪽에는 작은 네모가오른쪽에는 길쭉한 타원이”(42그려진 축석들을 바라본다소설의 말미에서 훈은 돌아오는 길에 들른 식당 창밖으로 세로로 비스듬히 뻗은 길의 윤곽선과 왼편에 있는 작고 네모난 창고오른편의 널찍한 타원형 텃밭”(73)을 바라본다십 분쯤 늦게 출발할 수도 있고수십 킬로미터를 우회할 수도 있으며,먹고 마시며 말꼬투리 잡기에 전력을 다할 수도 있지만이들은 결국 처음 출발한 그곳으로 돌아와서 헤어져야만 할 운명이다아니보았듯 소설의 앞과 뒤가 완전히 같으니 이들은 처음 그곳에서 한 발짝도 떼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낫겠다.


이상 네 작품을 너는 (운명에진다고 말하는 작품이라 정리할 수 있다면앞으로 읽을 세 작품봄밤역광이모가 말하는 바는 이것이다. 질 것인데어떻게 질 것인가시작은 없고 끝은 정해진 그 단두대 위의 시간’(야콥 타우베스)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봄밤의 답은 가장 간결하며 또 가장 위대하다간단하게는 인생의 바닥까지 떨어져본 두 사람알코올중독자 영경과 류머티즘 환자 수환의 사랑 이야기로 요약할 수 있는 이 소설에서 서술자는 이들의 불행과 병을 이들의 사랑으로부터 멀리 떼어놓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과거를 되짚기는 하되 꽉 쥐지 않고 놓아버리려고이들의 과거가 지금 사랑하고 있는 이들의 현재와 조금도 닿아 있지 않음을 설득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병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지금 한 사람 때문에이들은 슬프지 않음에도 울고 슬퍼도 못 운다하여 남에게는 끔찍”(8)하게만 느껴질 뿐인 삶은이들에게는 끔찍하기는커녕 서로를 끔찍이 사랑했던 순간들의 총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남은 두 작품은 어떻게 질 것인가에서 어떻게 못 쓸 것인가(소설 쓰기는 어떤 지점에서 실패하는 것이며그 실패의 지점을 소설로 어떻게 쓸 것인가)’로 질문을 바꾸어 대답한다작가에게는 살기와 쓰기가 원래 그리 다르지 않은 말이고좋은 작가에게는 아예 같은 말이다역광은 작년에 등단한 신인 소설가 그녀가 예술인 숙소에서 보낸 꿈만 같던 며칠에 관한 이야기다소설은 좌담 때문에 도시로 나갔던 그녀가 하룻밤을 보낸 후 우산도 없이 빗줄기를 뚫고 숙소로 돌아오는 장면에서 시작하여 발코니에 앉아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목격하는 프롤로그위현이라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과 보낸 며칠텅 빈 발코니를 바라보다 방으로 들어가는 에필로그를 차례로 통과한다과 은 같은 장면에 대한 다른 서술이고그녀가 알코올중독자라는 설정 때문에 우리는 가 실제 있었던 일인지 아닌지를 확신할 수 없다실로 설정이나 장면이나 문장 하나하나가 고도로 압축된 상징들로 이루어진 를 하나하나 뜯어본 글은 이미 쓴 적이 있으니여기에서는 그것이 오만과 편견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만 언급하도록 하자그들 모두를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했던 그녀가 실은 그들 누구와도 진실로 만나지 못했다는 이야기거기 있음에도 있지 않은그녀의 앞에 거짓으로 나타난[僞現이들이런 이야기를 가운데에 놓고 거의 같되 조금 다른과 을 앞뒤에 둔 이유는 뭘까이 시점에서 우리는 과 을 써내려간 이가 누구인지 떠올려야 한다권여선작가 권여선이 아니라면 누구겠는가그러므로 이것은 만났으나 만나지 못한곧 있었으나 없었던 것과 다름없는 만남들을 거친 후 을 으로 바꾸어 적은 소설이다의 그녀로부터 지난 시절 권여선의 모습을 읽어낼 수 있는 이라면 역광을 일종의 참회록으로 읽는 것도 가능하리라.

이모는 화자인 가 시이모인 윤경호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 소설이다그 이야기는 다시 셋으로 나뉘는데은 자신을 향한 호감으로 동기가 내민 손에 성가시고 귀찮다는 이유로 담배를 눌러 끈 대학 시절의 하루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가족의 뒤치다꺼리를 하며 살아왔던 시절은 기묘한 일들이 꼬리를 물던 하루의 끝에서 문득 을 떠올리며 제 손을 담배로 지진 어느 날의 이야기다을 계기로 이모는 수녀처럼 절제된 생활을 이어가고췌장암이 발병해 세상을 뜨기 전까지의 몇 달 동안 가 ①,②,③을 듣는다이모는 끝내 저를 살게 한 그 고약한 게”(106)무엇이었는지 모르고 숨을 거두었지만우리는 그것이 말 그대로 고독(苦毒)이었음을 알 수 있다.에서 남을 향해 겨누었던 그 독을 을 계기로 저 자신을 향해 겨누기로 하던 그때부터그 독기를 묵묵히 다스리며 고독(孤獨)하게 살아온 이모의 나날들은 비로소 생이 아닌 삶이었다는 것도 적어둔다.

이모의 삶은 거기까지였지만 아직 소설은 끝나지 않았다일인칭 관찰자인 는 뭔가 써보려다 그만두고”(105이모를 떠올리는 결말에서 마침내는 이 모든 슬픔과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나 사이를 가르고 있는아득하고 불가촉한 거리”(107)를 느낀다이모에 초점을 맞추면인물-화자는 인물의 속마음을 다 읽어내지 못한다이모는 이모를 다는 모른다. ‘에 초점을 맞추면 작가-화자는 도 이모도 다는 이해할 수 없음을 겸손하게 인정한다도서관에 앉아 회상하는 는 저 자신도 이모도 다는 모른다이 를 가 을 속속들이 다 알던 시절이 권여선에게 있었다이 먼저 물러나고 다음 가 물러나며나 그리고 나 그리고 나 사이에는 불가촉한 거리가 생겨났다이 거리를 아는 이에게만 나와 너 사이의 거리도 보인다소설을 더 알게 될수록 사람을 더 모르게 되었다고 해도 될까이러한 권여선을 통해 내가 소설을 점점 더 잘 알게 되었는지는 자신이 없지만분명 사람은 점점 더 모르게 되었다아니사람이 참 모를 존재라는 걸 점점 더 알게 되었다정말 이렇게나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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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발표된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창비, 2016.여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너무 많다.그러나 지금은 계란 노른자와 레몬과 참외와 무엇보다도 원피스이들이 전부 하나같은 색임을 당신이 기억해준다면 그것으로 됐다나는 나대로이문재의 시를 빌려 역광에다 지금 여기서부터 매 순간이 이 작가에게는 맨 앞이라 붙였던 찬사를 이 작품으로 옮겨오는 것으로 그 많은 말들을 아낄까 한다대신 이런 이야기를 덧붙인다지금 아직도 소설이라면 그것은 소설의 가능성 때문이 아니라 한계 때문이다남의 삶을 문자만으로 그려내야 하는 쓰는 이의 어려움남의 삶을 문자만으로 상상해야 하는 읽는 이의 어려움그 어려움을 지금 여기 함께 사는 타인을 상상하는 어려움에 어찌 비할 수 있으랴마는나는 부족하나마 이만큼이라도 어려운 무언가를 소설 말고는 상상하기 어렵다쓰고 읽는 과정에서의 이 지난함이야말로 오로지 소설만의 것이며다른 건 다 양보한다 한들 이것 하나 때문에라도 지금 여전히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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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필자의 말 정도로 읽어주시길그래도 권여선 소설인데술 얘기를 너무 안 했더니 뭔가 빠진 것 같아서주정뱅이의 자아는 셋이다안 취한 나 만취한 나 다음 날 후회하는 나필름이 끊기는 일이 잦아지면서 과 는 서로 잘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이야 뭐 사라진 지 오래고때문에 과 는 오래 새침했는데이 사라지고 나서야 비로소 둘 사이에 불가촉한 거리가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이 몰라서 그렇지는 저만의 세상에서 행복하지 않을까언젠가는 술 마시는 핑계를 길게 써보고 싶었는데 이제 이 글을 핑계삼으면 되겠다도 나고 도 나니나날이 술을 마시는 나는 매일 두 개의 삶을 사는 셈이다도대체 삶이 두 배가 되는 묘약이 있다면 마셔야겠나 말아야겠나고백하자면 이 글을 쓰기까지는 과 가 다 수고했다종내에는 이 혼자 많이 고생했으니 이만 가 되러 가련다.


「나 그리고 나 그리고 나 - 권여선론」

『문학동네』, 2016.가을, 576-59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