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by 현경

그러나

조해진 외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생각정거장, 2016 -

 

문학평론가 황현경

 

이 문장을 쓰고 있는 2017년 3월 1018대 대한민국 대통령 박근혜가 탄핵되었다나는 기억력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이렇게 적어두어야 잊지 않는다오늘 읽을 소설은 2016년 여름창작과비평에 발표되었다가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에 우수작으로 수록된 권여선의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라는 작품이다이 책에는 대상 수상작인 조해진의 산책자의 행복과 같이 좋은 소설들이 많지만나도 당신도 오늘은 이 작품을 읽어야겠다.

이야기의 시작은 2002년 한일월드컵 폐막식 직후인 7월 1일 월요일고등학교 3학년 김해언이 두부 손상을 입은 시신으로 인근 공원 화단에서 발견되었다하루 전인 6월 30일에 그녀를 차 조수석에 태우고 어딘가로 향하던 같은 학교 같은 학년 신정준이 강력한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확실한 알리바이로 인해 그가 범인이 아님은 곧 증명되었다다음으로 둘이 탄 차를 목격한 한만우가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그 역시 결정적인 증거가 없고 살해동기가 미약하다는 이유로 풀려났다.사건은 미제로 남고 시간은 2016년까지 흐른다.

우선 이 소설은 자식을 잃은 엄마와 언니를 잃은 동생의 이야기다해언이 떠난 뒤 엄마는 해언의 이름을 원래의 것인 혜은으로 바꾸려 안간힘을 다한다마치 그녀가 살해당한 게 그 바뀌어버린 이름 탓인 양동생 다언은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을 뿜어내던 언니의 얼굴을 가지려 여러 번의 성형수술을 받는다마치 떠나버린 언니를 자신이 대신하려는 듯이거기 이런 문장들. “나는 우리가 현실로 돌아오지 못했음을 알았다비틀린 경로로 우회하지 않고는 다시는 현실로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147또 이런 문장들. “죽음은 우리를 잡동사니 허섭스레기로 만들어요순식간에 나머지 존재로 만들어버려요.”(195남겨진 이들의 끝나지 않을 고통에 대해서라면 이 이상 뭘 더 어떻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문장들이다.

또한 이 소설은 그 아픔을 지켜보는 이의 이야기다해언과 한 반이었으며 다언의 문예반 선배였던 상희는 2006년에 한 번그리고 2015년에 다시 한 번 다언을 마주친다다언을 위로하려던2006년의 상희에게 이런 말들이 돌아온다. “내가 언니 언니 하면서 괴로운 마음을 털어놓을 줄 알았어요그럼 짠한 얼굴로 위로도 해주고 격려도 해주고 언제든 힘들면 연락하라고 토닥토닥그렇게 언니 노릇 하고 싶었어요?”(132다언의 태도에 혼란스러워하던 상희는 2015년의 재회를 통해서야 다언에게 그 사건이 끝없이 계속되리라는 것그리고 그게 한 인간의 삶에서 어떤 무게일지 나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136)는 것을 마침내 깨닫는다사건의 당사자와 그로부터 한발 떨어진 이그 둘 사이의 더는 좁혀질 수 없는 거리를 아프게 되새기게끔 하는 문장들이다.

어쩌면 이 소설은 인과응보 혹은 천벌”(163)에 관한 이야기인지도 모른다만우와 그의 스쿠터 뒤에 올라타 있던 윤태림은 정준의 옆자리에 앉은 해언의 옷차림에 대한 증언을 고의로 누락했다비록 그것이 결정적 증거가 될 수는 없었을지라도 그로 인해 그날의 진실은 얼마간 누락되었다마치 그 죗값을 치르기라도 하듯 만우는 골육종에 걸려 다리를 잘라내었고끝내 온몸에 퍼진 육종으로 스물여덟 살에 죽었다후에 정준과 결혼한 태림은 육 개월 된 딸아이를 유괴당했다. (어쩌면 그 아이는 다언의 엄마에 의해 해언을 대신하여 길러지고 있다.) ‘2009 : 이라 이름 붙은 장에서 선생님과 상담하는 이가 태림이 맞는다면정준이 해언을 끈으로 묶어 살해했거나 혹은 그의 앞에서 해언이 머리를 욕실 벽에 부딪쳐 자살한 게 맞는다면죄를 지은 이들이 벌을 받는 이야기로 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이 모든 일들에 대한 참회록”(136)을 쓰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다언이다어째서?어째서 언니를 잃은 동생이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참회록을 쓴단 말인가이 단어가 눈에 밟히기 시작하면서 이것은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된다그러고 보면 이미 첫 문장부터가 이것이 무슨 소설인지를 말하고 있었다. “나는 오래전 어느 경찰서 조사실에서 있었던 장면을 상상한다.”(101)디테일이 과잉된 다언의 그 상상 속에서 만우는 자주 범인이 된다이를 새기며 읽으면 앞서 언급한 ‘2009 : 이 달리 읽힌다정녕 이것은 공범 혹은 범인이었던 태림의 고백이 맞나차라리 만우를 포함하여 사건에 얽힌 모든 이들을 한 번씩 범인의 자리에 놓아보던 다언의 상상은 아닌가진실은 또렷하지 않다오로지 다언이 그들을 죄인으로 상상해왔다는 것곧 그들에게 죄를 지었다는 것 하나만이 또렷하다.

그렇다면 참회록은 다언이 쓰고 있다던 그것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리라온통 노랗게 빛나는 이 소설 자체가 한 소설가그러니까 플롯의 이름으로 이야기의 인과를 밝혀 적는 것을 업으로 해온 이의 참회록이 아니라면 무얼까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를 몰라서말해야 할 이들이 말하지 않고 알려줘야 할 이들이 알려주지 않아서, ‘혹시나 만약으로 시작되는 상상을 통해 스스로를 괴롭히는 죄를 지으며 울다 병든 이들 앞에소설 속 사건의 인과를 자신만만하게 틀어쥐곤 했던 작은 세계의 신이 바친 참회록소설 속 그들이 애타게 부르던 당신은 그 세계의 인과를 관장하는 신곧 작가에 다름 아닐지니,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로 요약될 이 신실한 참회록에 어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있으랴.

2017년 3월 10일 오전 11시 21헌법재판소는 우리에게 노랑을 아픈 색으로 만들어버린 그 사건이 그러나’ 사법적 판단의 대상은 아니라고 밝혔다내가 법을 알겠느냐마는구구절절한 보충 의견’ 없이도 글 쓰는 이로서 나는 이 역접(逆接)이 적어도 두 가지를 단호히 말하고 있다는 것만은 또렷이 알겠다사법적 범위 안에서의 판단을 위해 더 밝혀져야 할 것들이 남았다는 것동시에 사법적 판단의 범위 밖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들도 남았다는 것이 글을 마무리하고 있는 2017년 3월 12前 대통령 박근혜는 청와대를 나와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많은 이들이 오랫동안 바라왔던 순간이다그러나,

아직은 아니다끝이 없는 일들이 남았다.


「그러나 - 조해진 외,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6』」

『기획회의』, 2017.03.20, 130-13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