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에 대한 단상 by 현경

김영하에 대한 단상

김영하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2017 -

 

문학평론가 황현경

 

그를 처음 본 건 2012년 12월 18일이다등단하고 상 받으러 간 자리에서였고굉장히 크다는 게 첫인상이었다키도 그랬지만 무려 김영하인데 막 등단한 신인 평론가에게 얼마나 커보였겠나문학 하는 사람들을 침몰하는 배의 악단에 빗댄그런 걸 축사(!)라고 하고 내려갔다문학의 자리가 좁아져간다는 이야기였는데 자세한 건 잊었고나아질 것이니 믿으세요가 결론이었던 건 기억이 난다그때는 침몰하는 배가 아직 은유였다술 마시고 하다 보면 상패를 잃어버릴 것 같아 편집부 직원분께 맡겼는데맡겼다는 걸 잊어버려서 결국에는 잃어버렸다. 18대 대통령 선거 전날이었고,다음 날 잃어버릴 것에 비하면 상패쯤은 아무것도 아니기는 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그의 소설은 세 번째 장편 검은 꽃(문학동네, 2003)이다아니그냥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이 검은 꽃이다. 1905년 4월 4일 영국 상선 일포드 호를 타고 제물포항을 떠나 멕시코에 도착한 이들의 이야기다그들은 먹고살기 위해 떠났으되 돌아올 것을 의심치 않았지만에네켄 농장에서 착취당하는 사이 돌아갈 조국은 사라져버렸다영화감독 이재한으로부터 전해 들은 그 이야기가 한 편의 걸작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산문집 랄랄라 하우스(마음산책, 2005)에 실린 검은 꽃이 피기까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그는 거기에 그들은 내 조상이 아니라 1905년 제물포를 떠난 1,033명의 조선인들이며따라서 검은 꽃은 결코 민족의 수난사”(185~186)가 아니라고 썼다. ‘월경은 경계라는 개념이 선행되어야 가능한 상상력이므로 이 말은 맞다하긴그가 자신의 소설에 대해 하는 말은 여간해서는 틀리지 않는다.

검은 꽃의 마지막 페이지에는 김영하·이우일의 영화이야기(마음산책, 2003)라는 영화이야기도 아니고 아닌 것도 아닌 책을 함께 작업했던 만화가 이우일의 삽화가 있다수평선에 걸친 해를 향하는 한 척의 배일포드 호는 태평양을 가로질러 동진하였으므로 아침 해일 터인데이유는 모르겠지만 내게는 석양처럼 보인다저들이 끝내 오르지 못한조선으로 향하는 배일까필시 그저 또 어딘가로 떠나는 배일 것이다괴테가 했다고 전해지나 아무래도 안 했을 것 같은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말은 김영하에게 있어 반대다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 1996)의 질주는 어디로든 무작정 떠나기 위한 것 아니었나검은 꽃이 피기까지는 이렇게 끝난다. “인생의 버스는 항상 엉뚱한 곳에 우리를 내려놓는다. 1905년의 그들처럼.”(187)

네 번째 장편 빛의 제국(문학동네, 2006)을 함께 떠올리면 그를 아나키스트로 정의하고 싶어진다. ‘무정부주의자’ 말고 아나키스트이렇게 말하면 너무 단순해지긴 하나, “작가는 자신이 만든 세계의 명예 시민”(검은 꽃』 작가의 말, 354)이기에 현실 세계에서는 무국적자다아는 사람은 다 아는 그의 첫 책은 무협 학생운동(아침, 1992)이다연세대 경영학과 86학번인 그가 온몸으로 통과한 80년대 학생운동사를 무협소설의 형식으로 극화한 이 책은 같은 과 동기 이한열 열사에게 바쳐졌다. ‘80년대의 종언을 단호히 선언한 데뷔작 거울에 대한 명상을 포함한 초기 소설들에서 보이는 허무주의는 이렇듯 정상 국가를 꿈꾸며 치열하게 싸워봤던 이의 것이기에 절대로 포즈일 수 없다이것이 90년대가 김영하를 필요로 했던 이유다.

산문집 보다(문학동네, 2014)에서 자주 회자되는 구절은 여기다. “한동안 나는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 같은 존재로 살았다. () 2012년 가을에 이르러 내 생각은 미묘하게 변했다제대로 메시지를 송출하기 위해서라도 내가 사는 사회 안으로 탐침을 깊숙이 찔러넣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209나는 그가 탐침 찌르기가 아니라 메시지 송출에 방점을 찍고 싶었으리라 짐작한다본디 작가는 그런 직업이니까상상력의 나래를 펼쳐 허구의 세계를 비행하려는 작가의 발목을 현실의 중력이 잡아당기는그 팽팽한 순간순간의 결과물이 소설이라는 것도 다시금 확인한다그래서 그가 연희동 궁동산 난개발 저지에 앞장섰던 것이나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안이 가결되던 순간 국회 앞에 있었던 일 등이 내게는 조금도 생경하지 않다반쯤은 농담인데허물어져가는 궁동산 기슭에 위치한 자택을 배경으로 주먹 쥔 팔을 들어 올린 그의 사진을 보면서는 과연 왕년에 데모 좀 해봤던 이다운 이라고도 생각했다.

작가가 되기에는 너무 평범하게 살아왔다는 이야기를 그는 자주 한다그런 게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는 건 그가 이를테면 돌아보는 사람이 아니라 내다보는 사람이어서일 것이다노랗게 염색한 머리에 귀걸이를 걸고 상 타러 왔다던 이야기야 워낙 유명하고개인 홈페이지를 직접 운영했던 것도 팟캐스트를 시작한 것도 작가로서는 아마 처음일 것이다이제는 낯설지 않은 작가와의 만남이나 북 트레일러도 마찬가지남들이 안 하던 것을 했다기보다는곧 남들도 다 하게 될 것을 언제나 그는 조금 일찍 했다이제는 TV 예능 프로그램(<알쓸신잡>)에서도 그를 볼 수 있다취기 오른 얼굴로 알아두면 쓸데없는 잡학들을 끝도 시작도 없이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좋아 보이고 또 자연스러워 보인다역시나 작가는 궁금한 걸 못 참는 사람이 되는 건가 생각이 드는 한편, ‘망명정부의 라디오 채널이 기막힌 비유라는 생각도 든다.

대체로 검은 꽃부터 오빠가 돌아왔다(창비, 2004)를 거쳐 빛의 제국에 이르는 기간을 그의 전성기로 본다펜이 춤을 춘다는 게 뭔지 이 작품들을 보면 알게 된다적지 않은 팬들이빛의 제국에 실망한 것 같지만나는 그 진가를 모르는 그들이 실망이다사실 퀴즈쇼(문학동네, 2007)까지도 나는 좋았다이건 PC 통신 프로그램의 파란 바탕색이 아직도 생생한 이로서의 마땅한 의리다이후 한 권의 소설집과 두 권의 장편은 아쉬웠다나쁘지 않았다 정도로 타협하기에는나는 이제 평론가고 그는 여전히 김영하다다섯 번째 소설집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2017)을 소개하려 시작한 글이므로 이제 그 일을 하자김영하의 수식어로는 김영하면 충분하고,오직 두 사람은 김영하의 소설집이다.


「김영하에 대한 단상 -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기획회의』, 2017.07.20, 132-13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