틀린 옳음 by 현경

틀린 옳음

임현그 개와 같은 말현대문학, 2017 -

 

문학평론가 황현경

  

의심을 해라결국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바로 그 점이니까.

고두(叩頭), 33.

 

질문이 책의 제목은 무엇인가그 개와 같은 말이다그 개와 같은 말이기도 하지만 그 개와 같은 말이기도 하다혹 그 개와 같은 말로만 읽었다면 그 개를 잊거나 잃은 것이다반쯤은 틀렸고 반쯤은 맞았으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싶은 대로 본 셈이니 조금도 옳지 않다우리는 한 번씩 실수한다거나 고작 개 한 마리일 뿐이라 한다면 역시 맞지만 그르다그게 그 개가 아니라 나나 너나 우리였다면 과연 달랐을까우리의 옳음을 시험에 들게 하는 질문들이 이어질 것이다답이 곤란하다면 우리가 덜 옳다는 의미다다행히도 우리는 거의 옳다이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말이다불행히도 우리는 조금 그르다이도 우리가 인간이라는 말이다다시그 개가 시작이다.

 

*

 

그 개의 진실에 집중하며 그 개와 같은 말을 요약하자면 이게 최선이다유년 시절의 개 한 마리의 기억을연경에게 들려준 기억을세주에게 들려준 기억을지금의 가 떠올리는 이야기이 네 겹의 시점(時點)이 가뜩이나 그 발화의 의도와 맥락을 알 수 없이 오가는 말들로 어지러운 이 소설의 진실을 더욱 흐릿하게 만든다가장 쉬운 질문부터. ‘거기 그 개가 있었나?’ 답하면 오답이다기억 속 기억 속 기억 속 그 개가 실재했음을 증명할 마지막 단서인 그 시절의 허름한 집마저 흔적 없이 지워졌으니잠깐 머물다 이내 사라진 후 잊힌 말종내에는 거기 정말 있었는지도 모를 말그게 그 개와 같은 말이다.

아무 의미도 없는 말들이라는 의미는 아니다어떤 말들은 의미 없이 발화되지만모든 말들은 발화되며 의미를 획득한다. ‘와 연경, ‘와 세주 사이를 채운 그 말들은모든 관계가 그렇듯 가깝고도 먼 그들의 관계를 어떠한 식으로든 매개한다예컨대 기억 속 기억 속 와 연경의 말들그 개가 등장하는 의 말은 2000년 1월 1일 밀레니엄의 종로에 대한 연경의 회상에 따라붙는다이름도 얼굴도 없는 수많은 이들이 서로 밀고 밀리던 그곳에서 연경 또한 그림자 같은 존재였기에이제는 이름마저 잊힌 그 개의 이야기는 그녀에게 위로가 되었을 수도 있겠다. “그 순간만큼은 연경이 온전히 나의 말을 이해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166이 쓸쓸한 소설에서 조금의 온기가 느껴진다면 이러한 순간들 때문이리라.

희미한 말들의 양 끄트머리를 붙들고 그들이 간신히 닿아 있었다 하면 그만일까아니다만 ’ 혼자 그렇게 느꼈다고만 할 수 있을 뿐연경의 마음과 의 느낌 사이에 거리가 없을 수 없거늘 하물며 기억 속 기억 속 느낌이라면 진실은 아득하기만 하다세주를 만나던 는 한 번씩 불안하다. “나의 어떤 말로든 세주를 웃게 하지 못하지만그렇다고 울리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라는 불안.”(158연경을 만나던 도 그랬을 것이다마주 앉은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는데네가 보는 걸 나는 못 보고 내가 보는 걸 너는 못 본다이 숙명적 무지가 고작 말로 극복될 수 있을까그 개 같은 말로연경과의 기억을 들은 세주가 좋은 사람이네”(171하며 등을 쓸어주지 않았냐고지금 그 개와 같은 말을 말하는 건가?

 

무슨 말이 그래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착하다좋다그런 건 일종의 상태 아니냐그랬다가 안 그러기도 하는 거 아니냐그냥 너나 나 같은 사람이잖아그 애가 죽었다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넌 아무것도 모르잖아원래 질이 나쁜 사람일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이 죽으면 너는 뭐라고 말할 건데네가 뭘 안다고 그렇게 말해왜 다들 무책임하게 좋았다고만 해불쌍하니까씨발 존나 불쌍하니까 다 잊어버리고 좋은 것만 생각하라는 거야뭐야그럼 좋은 사람 이외의 그 애는 다 어디로 가는데어떻게 좋은 게 그 애의 전부야왜 함부로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좋은 사람, 114~115)

 

좋은 사람의 는 기억한다고 말한다재작년쯤 친구 우재의 촬영장에서 딱 한 번 만난점점 시야가 줄어드는 병을 앓는다던 남자를주방과 가게 밖을 배회하며 장소를 빌려준 식당 주인과 그 개와 같은 말들을 나누는 동안 소주 마시는 연기를 하던 그를얼마 뒤 도로에서 미끄러진 오토바이와 함께 트럭 아래로 들어갔다던 망자를사운드에 문제가 생긴 탓에 영상이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며 전화를 걸어온 우재가 찾아간 장례식장의 주인공을얼마 뒤 만난 우재에게 는 말한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은 사람이었는데 불쌍하다”(114)고 말한다곧이어 돌아온 우재의 저런 말들그러니까 그 개와 같은 말 좀 작작하라는 말들.

너무하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첫머리의 그 위령비를 멀찍이 세워놓은 이들의 마음이 그러했듯 우리가 기억을 좋게좋게’ 삭제·편집하는 건 더 나은 지금을 위한 자연스러운 일인 것을인지에 시간이 더해진 게 기억일진대 오해에서 출발하곤 하는 우리는 이미 처음부터 별수 없는 것을식당 벽에 내내 붙어 있던 광고 포스터를 보기 전까진 보지 못하는다 들었을 턱이 없는데도 다 들려요”(101말하는 우리를서로의 을 떠돌며 닿지 못할 말들에 의사(意思)를 실어 소통을 꾀하는 우리의 무언극을다들 이렇게까지 애쓰고 있는데 거기에 대고 같잖네”(111하고 말해도 되는 건가.

답은 어렵고 질문은 남았다. “우리가 이렇게나 닮았다는 의 결론에는 딱 그 개와 같은 말」 정도의 미온이 있다너도나도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만은 가 알게 되어서일 것이다그런데 그걸 들어줄 우재가 지금 옆에 없다”(121). ‘나는 모른다와 너는 모른다는 다르고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은 또 다르다같은 이야기로 남을 웃기는 데 우재는 성공하고 는 실패했듯 말은 그 주인이 바뀌면 의미도 바뀐다우재에게 말했다면 그건 다시금 개와 같은 말이 되지 않았을까우재가 들었다면 필시 같잖다, ‘같지 않다고 말하지 않았을까.

말이 문제라는 말인가그것은 맞다발화라는 행위행동에 책임을 지라는 말보다 생각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낯설게 들리는 우리는 아무래도 작위(作爲)에 더 민감한 편이어서 너는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과 말하는 것의 차이를 감지한다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그런 말은 옳지 않다고 판단한다그런데 그런 우리는 옳은가그런 식으로 작위와 비작위의 차이에 기대어 판단하는 우리는 옳은가이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이다이처럼 임현의 소설은 질문을 한다기보다는 하게 한다답하려 애쓰다 보면 다시 점점 더 곤란한 질문들이 생겨난다결국에는 주객 모두가 우리 자신이 되는 이 독특하고도 집요한 산파술이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임현의 소설은 읽으나 마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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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는 사람에는 앞에서처럼 가까웠다 멀어진 와 문영 사이에 오간 그 개와 같은 말과 개와 같은 말이 혼재되어 있다다시금 그것을 구분하는 일은 거르고 각별히 주목해야 할 설정을 곧장 살핀다문영은좋은 사람의 가 그러했듯작가다. “보고 듣고 경험하고 구경”(236)한 것들을 추려 이야기로 만드는 이대한문 앞 노동자와 유족과 해고자와 분향소를 지나친 후 나는 그렇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자꾸 하게”(244된다고 고백하면서도어린 시절 친구의 누추한 집을 구경했던 경험으로 소설을 써버린 이다그 소설을 읽은 는 화가 나고 불쾌하다저 또한 재혼한 어머니의 남자를 멋대로 넘겨짚긴 마찬가지였으나작위와 부작위의 차이로 인해 우리도 문영이 조금이나마 더 불편하다곧 는 한 게 없고 문영은 무언가 했다.

임현이 즐겨 구사하는 강한 일인칭 독백체로 인해 잠깐씩 잊게 되기도 하지만 소설 속 인물(혹은 화자)과 작가는 결코 한사람이 아니다살인자에 대한 소설을 쓴 이가 살인자는 아니라는 식의 이런 당연한 이야기를 새삼 강조하는 것은소설 속 나와 너만큼이나 소설의 인물(혹은 화자)과 작가 역시 타인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그러하거늘 도대체 작가란 뭘 하는 이들인가소설의 인물들도 성격(달리 말해 인격’)이 있는 인간일진대보고 들을 수 있는 만큼만 그들을 보고 듣고서는 멋대로 편집해 말이 되게 쓰는’ 게 작가의 일 아닌가함부로 엿본 남의 삶을 함부로 이해하여 함부로 옮겨 쓰는 하여 작가의 다른 이름은 엿보는 손이다.

엿보는 손에는 최종화라는 이름의 작가인 주인공의 삶을 동경해 그가 읽은 것을 따라 읽고 그의 입장에서 생각하다 마침내 그가 쓸지도 모를 이야기를 예상 표절하게 된 유제호가 등장한다그는 젊은 시절의 최종화가 대필한 아버지 유남구의 자서전을 읽고서 아버지의 내면을 알아본 당신처럼 나도 누군가를 이해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82~83)다며 작가가 된 이다그러나 자서전이라는 명목하에 실은 여기저기서 짜깁기한 문장들로 채워진 그것이 이해와는 한참 먼 것임은 물론함부로 남의 삶을 이해해버린 유제호를 향한 최종화의 분노는 또한 작가인 저 자신을 향한 것이기도 하겠다나아가이렇게 말하는 게 가능하다면그들은 소설 밖 작가인 임현에게 항변하는 중이기도 하다. ‘왜 함부로 우리를 이해하려 드나.’

쓰면 쓸수록 죄가 커지는 아이러니를 작가가 예민하게 인지하고 있음을 짚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그것만으로는 작가가 아닌 우리와는 무관한 문제가 되니까소설은 유제호의 집에 찾아간 최종화의 손에 도끼를 들려주고서는 독자인 우리를 호출해 공범으로 만든다듣고 싶은 게 무엇이냐고그간 읽어온 소설들로부터 배운 인과의 법칙에 따라 당신은 그럴듯한 결말을 상상하고 있지 않냐고과연 그럴듯한 원인을 찾아서 불분명한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70식으로 너의 이야기를 함부로 상상한 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이해하는 짓은 우리도 한다우리가 우리 자신을 기소하고 변호하고 심판해야 할 생각의 법정에서는 을 놀리지 않았다는 것곧 부작위는 무죄의 근거가 될 수 없다.

불가능한 세계를 통해 되짚자면 이렇다전산학 교수 장이 세계의 비밀을 푸는 알고리즘을 찾아낸다무한한 가능성으로 존재하던 수많은 길들 중 가장 최적의 이동경로”(277)가 단번에 구해지게 된 그 세계는 다른 가능성들이 미리부터 모조리 불가능한 세계에 다름 아닐 것이다허무맹랑하게 들리겠지만 그렇지만도 않다문명의 탄생을 농경과 연관 짓는 익숙한 설명에 기대자면봄에 뿌린 씨앗을 가을에 거둘 수 있으리라는 예측이 가능해지며 시작된 문명은 또한 예측 불가능성을 꾸준히 줄여가며 지금껏 버텨왔다곧 세계를 인과로 지탱되는 이야기로 만든 건 다름 아닌 우리 인간들이고그 결과 우리는 미래도 귀납적으로 알 수 있다.

알 수 있다고 믿는다불행한 사고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고게다가 그 대상이 우리일 확률은 더더욱 없다고 믿는다믿을만해서라기보다는 그저 믿고 싶어서 믿는다그렇다면 머지않아 태어날 아이에게 불행한 일들이 닥칠 가능성에 불안해하는 장 교수 딸 소진은 차라리 합리적인 의심을 하고 있는 것 아닌가우연히 그렇게 되는 것과 우연히 아니게 되는 것 사이에 본질적인 차이는 없는 거니까그런 일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여 영원히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기에 그 불안은 결코 지나갈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면 기분이 나아질 거”(281)라는 남편 민재의 말에 소진이 답한다. “아니야그런 문제가 아니야.”(282)

왜 우리가 서로를 오해할 수밖에 없는지를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이야기의 인과적 질서가 환상에 불과한 것임에도 너라는 세계를 자꾸 이야기로 이해하려 들기 때문이며심지어는 역지사지’ 같은 걸 해보려고까지 하기 때문이다지하철에서 악취가 나는 여자를 마주치고는 그녀가 자신이 되고 싶었을 거라고자신이 그녀였을 수도 있다고 말하는 소진을 보라. ‘이야기를 의심하면서도 남의 이야기를 읽어보려는 그녀는 자신과 타인을 동시에 기만하고 있다장 교수와 소진의 대화도 보라. ‘나를 네가 모른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것을 네가 모른다는 것을 내가……’ 이 기만의 무한 연쇄는 일단 시작된 후에는 중간에 끊을 수도 없는지라 아예 시작을 안 하는 수밖에 없어 보인다그렇다면 다시 질문정녕 아무 생각도 행동도 하지 않을 때만 우리는 옳을 수 있는 걸까.



*

 

가능한 세계의 화자인 아홉 살 소년은 미래를 보는 이다그 가능한 세계’ 중 최악의 경우에 소년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끔찍한 참사를 일으킬 예정이다불가능한 세계와 결정론적 우주라는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그 비극적 결말은 소년이 매 순간 내렸거나 내릴 선택들에 달렸다곧 소년은 자유의지(Free Will)’로 미래에 개입할 수 있다하여 이 작품의 질문은 일단 이것이다미래를 미리 알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옳은가소설은 저 자신이 일 년 후 사고로 죽는 결말을 소년이 선택했음을 암시한다언뜻 숭고한 희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문제는 이게 아니다아마 나처럼 당신도 소년의 결정이 타당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다그런데 그 판단을 우리가 내리는 것은 옳은가이게 문제다.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평범한 재앙들”(25)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게 그 발생 가능성이 제로임을 뜻하는 건 아님은 불가능한 세계에서 확인했다가능한 세계가 소년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결말을 모조리 비극으로 둔 것은 그래서이다. (우리 중 상당수는 그 평범한 재앙들을 피해가기는 한다어느 정도는 운이고또 어느 정도는 문명’ 덕분이다예컨대 문명은 주차장을 무너지지 않도록 만들거나호우에 쉽게 열리지 않도록 맨홀 뚜껑을 무겁게 만든다.) 아무튼 다시우리는 왜 소년의 희생을 지지한 걸까소년이 선택하지 않은 다른 결말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우울증으로 자살하는데이 경우 그래도 소년이 죽는 게 낫다는 판단은 앞서만큼 쉽게 내려지지는 않는다둘을 비교하자면 결국 우리는 희생자의 머릿수를 헤아린 것일 테다.

다시금 너무하다 싶다우리가 무슨 악의가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니까그런데 거기에 있어와 같은 작품을 보면 너무한 게 아닌 것도 같다한 해 전신혼여행을 떠난 은우와 무영의 차에 젊은 남자가 부딪친다이어 나타난 노인은 크게 다친 것도 아니니 그냥 가라 말하지만불안감과 책임감과 선의 따위가 뒤섞인 복잡한 마음에 부부는 그 둘을 집으로 데려다준다그 결과 젊은 남자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한다며 무영을 구타해 기절시키고 은우를 방으로 끌고 들어간다그 결과로 다음 날 돌아오는 길의 운전대를 잡은 무영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는다그 결과로 이어진 사고그 결과로 잘려 나간 그의 오른팔.

역시 너무한가아니정말 너무한 건 사고가 아니라 그 이후다팔을 잃은 무영에게 헌신하는 은우는 그게 마땅히 지켜져야 할 도리라고 자신을 설득한다. “배려와 동정도 구분한다. “돌본다는 행동이 주는 우월감”(181)까진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경계한다그러나 무영의 환상통까지는 이해하지 못한다그것이 무영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바로 그 점에서 오는 만족감”(196)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속한 것이기 때문이리라은우는 무영에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혼자 남는 일이 두렵다던 은우가 무영을 필요로 했던 것이다.

하여 넌 뭐라도 했었어야 돼”(199말하는 무영의 화는 일 년 전 그날의 은우를 향하는 것만은 아니다네 생각만 하는 것 말고 무언가 더헌신과 배려와 인내와 이해라는 허울 뒤에 숨어 우월감에 젖어 있을 것이 아니라 무언가 더이게 무영이 바라는 바다그러나 무엇을 더뭔가 더 한다고 하여 그것이 반드시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도리어 끔찍한 일들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날의 사고를 통해 배우지 않았나이러한 맥락에서 사고가 현실인 듯 환상인 듯 묘사되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그게 일어난 일인지는 분명하지 않더라도 그건 분명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무영은 화를 참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하여 은우가 옳았다고는 할 수 없다는 의미다.

하나 더의 남편은 뺑소니 사고를 목격했다고 믿는다앞서와 마찬가지로 그는 뒤섞인 마음으로 목격담을 증언하고는너무 일찍 사고 현장을 뜬 자신을 누군가가 비난할 거라는 생각에서 헤어나질 못한다우리는 그를 향한 아내의 답답함이 사치스러운 것임을 느낀다제삼자의 위치에서 그녀가 갖는 안도감이 우리에게는 보인다사고로 죽은 이의 아내가 찾아왔을 때 그 여자에게만큼은 어딘가 더 딱한 처지로 비춰지길” 바라며 전하는 거짓된 위로의 말아니 이야기를 보라나는 결코 네가 아닐진대 서로 크게 다를 것도 없”(223)다며 전하는 그 값싼 동정이 역겹지 않은가경로를 달리하여도 도착지는 같다[]에 있는 이는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옳다는 결론.

냉랭하게 들리는가그렇다면 실은 이것이야말로 임현의 소설에서 가장 열렬한 지점이라는 것을 확인할 차례다의 남편은 어디서고 계속 목격되는 이다아내는 그게 불편한데 정작 그는 자신이 유일한 사람”(225)이 아니라는 걸 순순히 받아들이는 듯하다어째서내가 그들에게 타인이듯 그들도 나에게 타인이라는 것을그들과 똑같이 낯모를 이라는 점에서 유일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누가 나를 뒤에서 보면 저런 모습이겠네 싶은 거지.”(212서로를 몰라 아무것도 주고받을 일 없는 그들이 닮았다면 그것은 나도 너도 모른다가 아니라 나도 너를 모르고 너도 나를 모른다는 점에서만 그러하다이때 의 입장에서 가 주어 아닌 목적어라는 것은 곧 네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너 자신뿐이라는 의미다여전히 차가운가나는 도리어 이보다 더 뜨거운 환대가 그 어떤 기만도 없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

 

옳음을 묻다 보니 그 답에 타인이 섞여들어 간 게 이상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일이다우리가 옳음을 묻는 것은 ’ 때문이기도 하지만, ‘에게는 가 이니 결국에는 우리’ 때문이다우리가 완벽하게 옳아야만 한다는 뜻은 아니다누구도 그럴 수 없음은 차치하더라도 그게 맞는 건지는 다시 질문이 되어야 한다이렇게 옳음/그름에 대한 질문에 맞음/틀림이 추가된다무언가의 끝과 고두(叩頭)의 사례를 살필 것이다미리 이야기하자면 하나는 틀린데 옳고하나는 맞는데 그르다내처 말하면 이 두 작품만으로도 임현은 문제적 작가의 칭호를 얻을 자격이 충분하다.

먼저 무언가의 끝. ‘는 스물다섯 해 전부를 한집에서 살았다거기 살면서 두 살 되던 해에 어머니를 잃었다그러고는 아버지가 병으로 죽고형이 승합차에 치이고 오토바이에 밟혀 죽고그 사이에 지하방에 세 들어 살던 남자가 불에 타 죽었다어머니의 죽음은 기억에 남아 있지 않으나 나머지 셋은 다르다그들이 세상을 뜨던 날 는 꿈에서 붉은 토끼를 보았다토끼 꿈을 꾸면 누군가가 죽는다. ‘는 이런 결론에 다다른다.

 

괜히 그런 꿈을 꾸었던 탓에 이런 일이 생겼나 싶어서 장례를 치르고 한참 뒤에도 잠들지 못했다누구에게 말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닌 데다가 진짜 나 때문이라고 하면 어떡해그런 걱정으로 잠들지 못했다정확히는 꿈을 꾸지 않으려고 애썼다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게 옳을 것 같았다.(무언가의 끝, 141)

 

옳을 것 같았다절대로 그럴 리 없다백번 양보해 설령 그게 예지몽이라고 쳐도 그것은 누군가의 죽음을 예고하는 것이지 야기하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그럴 줄 몰랐다고? “알았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139)이라고모를 수 있다모를 수밖에 없고 모르면 그럴 수 있다안쪽으로만 열리는 문들이 가뜩이나 좁은 지하 월세방을 더 좁게 만든다는 것을자기가 연 문이 세탁기에 걸린다는 걸 인지하기 전까지는 모를 수 있다아버지가 한약을 데워 따라 마시는 데 쓰다가 병들고 나서는 침을 뱉던 용도로 사용하던 컵이었다 해도그걸 모르는 형수는 거기 동전이나 열쇠를 넣어둘 수 있다방세가 밀린 남자를 하필 겨울에 내보낼 때는 그가 이불과 버너를 들고 몰래 돌아와 타죽게 될 것을 몰랐으니 그럴 수 있다.

말하자면 는 인과를 뒤집어 생각하고 있다결과로 느끼지 않아도 무방할 책임을 느끼고 있다언젠가 자정이 넘은 밤 여기가 처음이라며 가든마트를 찾는 중년의 여자에게 는 모른다고 답했다얼마 안 가 모르지 않았음을 알아차렸다정말로 몰랐는지왜 몰랐는지왜 모른다고 말하며 큰 소리를 냈는지생각했다가든마트 앞을 지나갈 때 항상 그런 것은 아니었으나 한번 떠오르면 오랫동안 머물렀다”. 알지 못했던알 수 있었던옳지 못했던옳을 수 있었던 순간을 떠올릴 때 이 화자가 느끼는 책임감은 이 책의 그 누구의 것보다도 크다보았듯 그 책임은 인과가 뒤바뀐 결과이므로 (이치에맞지 않는데도 그렇다이것이 옳음에 대한 정답이라 생각하며 우리가 찾아 헤매온 무언가의 끝이다.

라고 완벽하게 옳지는 않음을 보여주는 순간들도 있다그 여자를 어느 순간이 지나면 생각하지 않았다”(147). 텔레비전의 사건 사고를 보며 제 무사함에 안심하기도 했다그러다 사고를 목격하고 너무 일찍 현장을 뜬 한 남자(의 남편일지도)의 사연에는 너무 무책임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오히려 그런 순간들에 는 지극히 인간답게옳지 않더라도 (이치에맞게 생각한다그렇다면 앞선 인물들과 마찬가지 아니냐고아니여기에는 빈도와 정도의 차이가 있다어쩌다 한 번씩이었을지라도그 누구보다도 는 옳음에 가까이 갔다 왔다이것은 또한 우리의 최대치다.

나머지 한쪽 끝은 고두(叩頭)먼저 밝혀둘 것이 있다이 작품이 화제가 된 것은 2017 8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문학동네, 2017)에 수록되면서부터였지만처음 발표된 것은 그로부터 일 년 전인 2016년 봄이다지난해그러니까 2016년 말 문단 내 성폭력에 대한 고발이 시작되기 전이다옳고 그름을 떠나 (상황에맞지 않는 말들이 있다더 많이 말해야 할 이들에게 더 많은 자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가 있다고두(叩頭)를 쓰던 임현은 한 해도 지나지 않아 마땅히 침묵해야 할 입장에 처하리라는 것을 몰랐다알았다면 쓰지 않았을 것이다덕분에 우리가 문제작을 하나 갖게 된 대신 그가 너무 많은 오해를 사게 되었다.

그것이 어째서 오해이며 무엇이 곡해되었는지를 선명히 하기 위해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선임할 수도 있을 것이다그는 아마 ‘14세 이상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이나 태아의 인권’ 등을 거론하며 자신의 제자와 잔 선생을 변호할 것이다사과를 원하는 우리에게 그걸 당신이 왜 받아야 하냐고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낮게 엎드리길 원하는 거냐고그렇다면 이 선생이 틀린 것 하나 없지 않냐고 반문할 것이다이미 많이 불편했을 당신에게 또다시 잔인하게 굴고 싶지는 않은지라 바로 결론을 제시할까 한다이 화자자신의 제자와 잔 윤리 선생의 말은 거의 맞다무엇이 틀렸는지를 지적하자면 할 수는 있겠지만 그의 유죄를 입증할 만큼은 아니다무엇보다도 결론에 이르러 알게 되듯 말처럼 들렸지만 생각일 뿐인지라 애초에 행위 자체가 성립하질 않는다분하지만 이걸 인정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다.

이 화자는 맞다그러나 옳지 않다일반적으로 생각의 법정에는 참관인석이 없으나 화자 스스로 재판 과정을 중계해준 덕에 우리도 이 말만큼은 할 수 있게 되었다그렇듯 엄청난 사건을 한 번도 아닌 두 번이나 겪고도 참으로 한결같지 않던가바로 이것이다자신이 옳은지를 사건 이후에도 스스로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오직 이것만이 그가 옳지 않다는 유일한 증거다완벽한 옳음 같은 건 환상이며나는 옳은지를 나에게 묻는 동안에만 나는 옳다옳다는 판결을 스스로 내리기 전까지피고인 나와 검사인 나와 판사인 내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동안만나는 옳을 수 있다이것도 또한 우리의 최대치다.

마지막 질문이다무언가의 끝과 고두(叩頭)」 사이우리는 어디쯤 있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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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현의 등단작인 그 개와 같은 말이 발표된 것은 2014년 6월이다세월호가 가라앉은 4월 16일로부터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았을 때다우리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재앙을 수습해줄 국가가 작동하지 않는 모습을 생중계로 보았다인과의 빈자리를 가만히 있지 않았더라면으로 시작해 그 배에 타지 않았더라면을 거쳐 ‘1997년에 태어나지 않았더라면으로 이어졌을 가정들로 어떻게든 채워보려는 이들도 보았다세계의 이야기가 무너지면 개인의 이야기도 따라 무너진다이 이야기들은 그런 중에 쓰인 것들이다세월호 이후 인과를 논하는 게 죄인 줄은 알았겠지만, “나는 괜찮고 젖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하기도 했겠지만, “그래도 뭐라도 써야 한다면 이걸 써야겠다”(임현신인추천 당선 소감 지금에 와서야 드는 생각이지만현대문학, 2014.6, 201)는 마음으로 썼을 것이다.

이제 그만하라는 이들도 보았고심지어 슬픔을 조롱하는 이들도 보았다지금껏 묻고 물어 확인한바 그들이 옳지 않다는 말을 우리가 옳으면서 할 수는 없다다만고두(叩頭)의 그 더럽혀진 골목을 떠올리며 말하자면, “이곳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시오”(41정도는 너와 내가 합의하면 되는 문제가 아닐까무엇이 맞는지를 함께 결정하고버리지 말라는데 자꾸 버리는 이들에게 너는 틀렸다고 말하는 정도는 나와 너의 옳음을 침해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이제껏 우리는 그래왔으니까무엇이 맞는지를 결정해온 건 결국 무엇이 옳은지를 고민했던 이들이니까옳은 게 그대로 맞고 그른 게 그대로 틀린 세계가 어딘가 있을지는 몰라도 지금 여기는 아닌 것 같아 드는 생각이다.

이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것은 곧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천사는 아니라는 의미일 터이다이 문장을 어떻게 읽을지는 당신 마음이다나는,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는 식의 말을 들을 때면 확실히 우리 중 누군가는 천사가 맞는 것도 같고, ‘미친개는 몽둥이가 약이라는 식의 말을 들을 때면 확실히 우리 중 누군가는 천사가 아닌 것도 같은데저게 각기 다른 사람의 말이 아닌 것같이 들릴 때면 여기 천사가 있기는 한 건가 싶어진다하긴나라고 뭐 달랐겠나그러한지라 그 누구도하물며 (읽는너와 (쓰는나조차도 완전히 옳을 수는 없다는 임현의 소설에 나는 여러 번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그러니까 애를 쓴들 불행히도 우리는 거의 옳다이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말이다그렇다면 애를 써도 조금씩은 그르다는 건 차라리 다행이지 않은가그건 인간이 우리여야 한다는 말일 테니까그게 맞는 것 같다.


「틀린 옳음

임현, 『그 개와 같은 말』, 현대문학, 2017, 283-30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