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촌이 배가 아프면 땅을 산다 by 현경

사촌이 배가 아프면 땅을 산다

 

문학평론가 황현경

 

등단하고 글로 돈 벌면서부터는 짬뽕을 안 먹는다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안 먹는다는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삼선 짬뽕을 시킨다국물을 퍼먹으며 이거야말로 돈의 맛이요 부의 현신이라 찬탄한다면 믿어주시려는가가만히 생각해보면 생각하는 데는 생각보다 노력이 많이 드는지라백번 양보해 행복은 돈으로 못 산다 쳐도 뭐 하나 살 때 드는 돈 돈 돈 하는 에너지를 다른 데 쓸 수 있다면 그걸로 나는 틀림없이 행복할 것 같다호기롭게 삼선 짬뽕을 시킬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이런데 오죽하랴그래서 나는 몇 년 전 코인에 무심했던 내가 한심하다이렇게 될 줄 알았더라면 영혼까지 끌어모아 싹 다 때려 넣었을 거니까지금 와서 하는 소리라는 건 안다드로리안을 빌려 타고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나를 설득할 자신이 없다피는 못 속이는 법돌아가신 우리 아버지가 사십 년 전쯤 첫 집 사려다 만 허허벌판이 알고 보니 압구정동이었다나 뭐라나나는 평생 이러고 살지 싶다.

코인은 대안이 될 것인가블록체인은 인류를 구원할 것인가멋진 질문들이긴 하나 테크놀로지라는 것은 언제나 무한한 가능성을 내포한 터라 가장 정확한 답은 아마 그때 가봐야 안다일 것이다다만 확실한 건 내가 못 땄다는 것사방에서 승리의 나팔이 울려 퍼질 때는 가만히 있었을 뿐인데도 어쩐지 돈을 잃은 기분이었다코인 얘기 좀 그만하라며 성토하던 많은 이들도 비슷한 심정이었으리라바로 그런 사람들참다 참다 더는 이러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은 심정으로 돈을 넣은 이들이 막판에 많이 잃었다들어가기만 하면 딴다더라는 풍문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달려들던 그즈음부터는 알다시피 그런 난리 통이 또 없었다정부의 코인 규제 소식에 장이 폭삭 주저앉아 다들 패닉에 빠진 시점에서도 바로 지금이라며 가즈아를 외치던 이들을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도리가 없다한편으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지만 말이다.

도대체 이런 거로 돈을 번 사람들은 누굴까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결단을 내린 이들의 노력과 대담함을 함부로 폄하해선 안 되겠지만그렇다고 돈 살 돈 있던 이들이 돈 벌었다는 사실까지 부정할 건 없는 것 같다너는 없었냐고있었다있었는데그 돈은 예컨대 당장 어디 아프기라도 하면 싹 긁어 병원에 갖다 줘야 할 돈이었고하여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금방 다 없어질 돈이었다느지막이 판에 흘러 들어가 금세 사라진 돈들이 바로 그런 것들이었다그러한지라 이건 딸 사람 따고 잃을 사람 잃었다는 정도로 볼 일이 아니다이를테면 십억 넣은 이들은 반 토막 나도 덜 입고 덜 먹고 할 것까진 없을 테지만전 재산을 털어서도 백만 원밖에 넣지 못한 이에게 반 토막이라는 것은 당장 뭘 먹고 살아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의미다요컨대 우상향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약속해주는 듯 보였던 그 게임은 누군가에게는 그의 막막한 현재만 끊임없이 되새기게 하는 것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런 이야기는 남들 벌 때 못 번 이의 징징거림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그래징징은 맞는데 좀 억울한 마음이 든다못 벌어서 억울한 것도 있지만그 요란했던 푸닥거리 덕분에 괜히 들쑤셔진 게 억울하다원래 우리는 가즈아보다 존버에 익숙하지 않았던가지긋하고 또 지긋하게달리 말해 지긋지긋하게다들 그렇게 존나 버티며’ 사는 것 아니었나문자 그대로 아직 오지 않았기에[未來어떠한 형태일지 모를 그것을 향해가며예측과 실현이 가능한 미래이거나 혹은 좀처럼 가능할 것 같지 않아 이라 부를 수밖에 없는 미래차곡차곡 오늘을 쌓다 보면 자연스레 이뤄질 미래이거나 혹은 그런 하루를 마감하며 술김에 산 로또에 당첨되든지 하여 벼락같이 밝아질 미래앞의 것이 우리를 걷게 한다면 뒤의 것은 우리를 계속’ 걷게 한다이렇듯 최소의 기댓값과 최대의 기댓값의 차이가 클 때 미래는 계속하여 미지의 영역으로 남는다그리고 알다시피 우리 모두를 움직이게끔 하는 최고의 원동력이 호기심이라는 것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 따먹던 시절부터 내려온 만고의 진리다.

반면 코인이 우리에게 보여준 미래는 실은 그 누구도 함부로 예측할 수 없고 감히 실현을 장담할 수 없는 것임에도 동시에 너무나 금방 가능해 보였다. ‘가즈아너는 곧 부자가 된다!’ 이제 와 생각하면 어떻게 그걸 철석같이 믿을 수 있었는지 아연하기만 한데한때 그것은 거의 신탁(神託/信託)이나 다름없게 느껴지기도 했다그러자 레이스(혹은 레이즈)가 시작되었다코앞에 피니시 라인이 뚜렷이 보이는데 누군들 뛰지 않을 재간이 있나조금이라도 먼저 뜀박질을 시작한 이들이 벌써 거기 다 도착한 것처럼 보이는지라 늦게 출발한 이들은 더 서둘러야 했다더욱이 그건 누군가 넘어질 때가 바로 내가 출발할 타이밍인 이상한 게임이어서내가 행복해지려거든 일단 남이 먼저 불행해져야만 했다쉽게 말해 저점매수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까지는 어쩔 수 없다 친대도사촌이 배 아프면 내가 땅 사러 가는 이런 방식은 아무래도 잔인하게 느껴진다면 내가 너무 순진한 걸까.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고 하필 사촌이란다부모나 형제자매도 아니면서 남도 아닌 그렇고 그런 사이그런 사이라는 것은 서로 시시콜콜한 소식을 일일이 전할 것도 없이 그저 각자 잘 살다 한 번씩 만나서 떠들고 웃고 헤어지고 할 수 있으면 그만인 법이다실은 여기 우리도 대개 그런 식이다. ‘우리라는 말은 자주 우리를 감동시키곤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좋은 것만도 아니다한 나라를 구멍가게만도 못한 방식으로 꾸려나가던 이를 끌어내린 것도 우리였지만, 20세기 중엽 수천만의 인구를 지구상에서 지워버린 이들도 또 다른 우리였다요컨대 우리가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모이려면 우리는 먼저 홀로 아름다워야 한다서로가 서로를 잊은 채서로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각자의 삶을 지긋이 살아내는 중에만 서로가 서로를 부를 때 반갑게 화답할 수 있다코인의 손짓에 응답하며 우리는 함께일 때 아름답지 않을 수도 있다는 불편한 진실을 상기할 수밖에 없었다. ‘함께해서 더러웠고 다신 만나지 말자.’ 무한경쟁 속에서 티끌 모아 티끌인 그 막막한 삶이 싫었던 우리는 결국 그 판에서마저 그렇게 또 누군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은 아니었는가그렇다면 다행인데 부끄럽지만 나는 그랬던 것 같다심지어 돈을 잃을 담력조차 없어 어떻게도 못 했으나고백하자면 분명 재미있게 구경했던 것 같기는 하다줄어드는 그 숫자가 누군가의 꿈과 행복을 수치화한 것임을 알면서도 낄낄대며 구경이나 하고 있었다니 나도 참 못났다그리 보면 정작 잔인한 건 게임의 룰이 아니라 우리 자신일 테다콜로세움에 사자와 검투사를 집어넣고서 피가 튀면 열광하던 이들도 또 다른 우리였으니까소설 속 수많은 악인들과 만나는 게 직업인데도 이 명백한 진실을 자주 잊는다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좌절과 고통이 그러나 엄연히 실재하기에 뭐라도 하나 배웠으니 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텐데도와중에 또 때를 놓쳐 못 딴 게 속상하기만 하니 나는 아무래도 안되겠다그러니 오늘은 그냥 짬뽕이다.


「사촌이 배가 아프면 땅을 산다」

『Motif』, 2018.04.02, 66-6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