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절을 두 번 by 현경

이 시절을 두 번

김영하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2017 -

 

문학평론가 황현경

 

보고 싶은 언니에게

 

어제는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었어요한번 상상해보세요언니는 희귀 언어를 사용하는 중앙아시아 산악 지대의 소수민족 출신으로스탈린 치하를 피해 미국 뉴욕으로 이민을 떠난 수십 명 중 하나예요뉴욕에서 이 언어를 쓰는 사람은 언니네가 전부예요고향에서는 러시아어가 표준어가 되었고언니네 언어는 이미 소멸되었다는 소식도 들려와요.(11)

 

오직 두 사람(문학동네, 2017)은 김영하의 다섯 번째 소설집이다. 1995지금은 없어진 리뷰라는 계간지에 거울에 대한 명상을 발표하며 등단한 지 이십이 년 만에 다섯 번째 소설집이니 사 년 조금 넘어 한 권꼴이다그가 발표한 장편은 모두 일곱 편이다1회 문학동네신인작가상 수상작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문학동네, 1996)가 처음이고 살인자의 기억법(문학동네, 2013)이 마지막이다장편은 3년 조금 넘어 한권 꼴이다.

소설집 중 하나를 꼽자면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문학과지성사, 1999)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문학동네, 2010) 사이에 위치한 세 번째 소설집 오빠가 돌아왔다(창비, 2004)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표제작이자 책의 첫머리에 놓인 오빠가 돌아왔다만으로도 이 소설집은 일등이다장편 중 하나를 꼽자면 고민할 것도 없다아랑은 왜(문학과지성사, 2001)와 빛의 제국(문학동네, 2006) 사이에 놓인 그 책검은 꽃(문학동네, 2003)이다한국문학에 입문하려는 이에게 나는 매번 이 놀라운 소설을 가장 먼저 추천한다.

산문집은 모두 아홉 권이다. ‘김영하 영화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는 있으나 김영하가 본 영화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저 영화를 본 김영하의 이야기라 해야 할 굴비낚시(마음산책, 2000)로부터 최근의 삼부작 보다(문학동네, 2014), 말하다(문학동네, 2015), 읽다(문학동네, 2015)까지다각기 매력이 달라 하나를 꼽는다는 게 큰 의미는 없겠지만 나는 랄랄라 하우스(마음산책, 2005)를 가장 아낀다.

꼽아본 세 권을 출간 순으로 세우면 2003년의 검은 꽃, 2004년의 오빠가 돌아왔다, 2005년의 랄랄라 하우스여기에 딱 한 권만 더 추가하자면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가 고민이 되지만 결국 내게는 빛의 제국(문학동네, 2006)이다빛의 제국까지 하면 내가 꼽은 네 권은 2003년부터 정확히 한 해 간격으로 출간된 것들이다그렇다면 이 시절이 김영하의 전성기였던 걸까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다.

김영하에 대해 쓸 때면 언제나 나는 그가 직접 한 말들그러니까 책의 작가의 말이나 산문집에서 뽑은 문장들과 인터뷰에서 했던 말들로 지면을 채워보고 싶은 충동을 강하게 느낀다이유는 간단하다김영하 소설에 대해 가장 잘 말할 수 있는 이는 다름 아닌 김영하 자신이기 때문이다얼핏 당연한 말 같지만 결코 당연한 말이 아니다. ‘이 작품은 무엇이다라는 말을 작품 그 자체로 대체하는 게 작가들이고그 작품들에는 우리 인간의 딱 잘라 명쾌히 설명할 수 없는 지점들이 논증이 아니라 예증의 형태로 표현된다그것들은 어떤 말로도 시원스레 설명할 수 없기에 소설이라는 형태로 그려진 것들이고그게 바로 작가들의 말하기 방식이다그런데 그는 소설로도 제 말로도 자신의 작품을 말한다그러한지라 예컨대 ‘90년대의 선언’ 혹은 ‘80년대의 종언으로 평가해 마땅한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설명하려면 책에 수록된 인터뷰의 다음과 같은 말을 옮기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역사와 민족 등이 90년대의 인간에게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역사와 민족 등의 범주를 동시대 인간의 삶을 규정하는 틀로 규정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오히려 중요한 것은 80년대를 풍미하던 역사와 민족 등이 빠져나간 상태를 살아가는 인간들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으며때문에 후일담 문학이나 리얼리즘 소설을 부정하는 자리를 나의 출발점으로 살았다. 90년대는 80년대를 풍미했던 준거집단이 해체된 상태이며그 결과 어느 누구도 나를 비추는 객관적인 거울을 지니고 있지 못하다.(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170-171)

 

스스로 알고 있다는 것만큼이나 이게 맞는 말들이라는 것도더구나 소박하지 않다는 것도 중요하다우리는 그의 등단작 거울에 대한 명상이나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를 ‘90년대적인 무언가로 과장 없이 평가하고특히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이 작품을 기준으로 80년대가 끝나고 90년대가 시작되었다고도 과장 없이 이야기한다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90년대는 1990년에 시작되지 않았다산해진미도 그 맛을 모르고 먹었다면 먹었다고 하기 어려운 것과 같은 이치로저가 살고 있는 시대를 모르고 살면 그들에게 그 시대는 살아진 게 아니다김영하의 90년대 작품에 열광하던 동시대 젊은이들은 저가 어떤 시대를 어떻게 살고 있으며 그 시대를 사는 자신은 누구인지를 그에게 배웠다.

여기까지를 이야기하고 나서야 오직 두 사람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이 책에는 2014년 겨울에 발표된 아이를 찾습니다를 가운데 두고 그보다 앞선 옥수수와 나슈트최은지와 박인수그리고 그에 뒤따른 인생의 원점신의 장난오직 두 사람이 수록되어 있다이게 무슨 책인지를 작가의 말에서 다음과 같은 대목을 빌려 적는다.

 

(지난 칠 년간의 내 삶도 둘로 나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이전 세 편에선 옥수수와 나의 찌질하고 철없는 작가생물학적 아버지의 유골을 받으러 뉴욕으로 떠나 양복만 걸치고 돌아오는 슈트의 편집자싱글맘이 되겠다는 직원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출판사 사장이 나온다그에 비해 이후의 네 편은 훨씬 어둡다희극처럼 시작했으나 점점 더 무거워지면서 비극으로 마무리되는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아이를 유괴당했거나첫사랑을 잃었거나탈출의 희망을 버렸거나아버지의 죽음을 지켜보는 딸의 이야기를나도 모르게 쓰고 있었던 것이다.(오직 두 사람, 270)

 

직전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년 이후 그의 칠 년을 둘로 나눈 기점은 물론 2014년 4월 16일의 세월호그리고 그해 겨울의 아이를 찾습니다그는 이 소설들 모두가 뭔가를 상실한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늘 그랬듯 정확히 소개하며 앞의 세 편을 이렇게 해설한다. “옥수수가 아니라 믿으면 됐고아버지의 양복이 있으니 됐고위선과 작별했으니 된 것이다그들은 모두 자기 자신을 위안하기 위한 연기를 하고 있다.” 뒤의 네 편은 이렇게 정리한다. “그들은 자위와 연기는 포기한 채 필사적으로 그 이후를 살아가고 있다.”(270아래에 덧붙인 말들은 이렇다.

 

이제 우리도 알게 되었습니다완벽한 회복이 불가능한 일이 인생에는 엄존한다는 것그런 일을 겪은 이들에게는 남은 옵션이 없다는 것오직 그 이후를 견뎌내는 일만이 가능하다는 것을.(오직 두 사람, 270)

 

오직 두 사람에서 평생을 아버지 슬하에 머물렀던 까닭에 그것이 타의였는지 자의였는지를 구분할 수조차 없게 된 주인공 현주의 남은 생은 그 이후일 것이다아버지와 딸이라는 그 좁은 관계 안에서 둘만이 공유했던 무언가가 그녀의 전부였을 터소통할 수 있었던 오직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떠났으니 이제 그녀는 오직 한 사람이다. ‘그 이후’ 그녀의 삶은 누군지도 모르고 실재하는지도 모를 언니에게 그녀가 길게 쓴 편지 한 통만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의 형식 자체가 암시한다그녀를 통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상실 이후를 살고 있음을무언가 사라진 빈자리를 채우려 허공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 혹은 누군가에 닿길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알게 된다그렇게 한 시절의 소설은 우리가 누구고 어떤 시절을 보내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준다.

김영하의 전성기는 2003년에서 2006년에 이르는 기간이 아니다그는 언제나 김영하였고 지금도 김영하일 뿐그저 내가 그 시절의 김영하를 사랑하는 것이리라사실 나는 그 책들을 나중에서야 읽었는데그때 비로소 그 시절을 보낼’ 수 있었다젊어서 젊음을 몰랐던 그때를 뒤늦게나마 만끽하며 다시 보냈고그러고서야 그 시간들을 기억 속 잊혀서는 안 될 것들이 모인 그곳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그 작품들 덕에 그 시절과 그때의 나를 비로소 사랑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작품들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누군가는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와 첫 소설집 호출(문학동네, 1997) 시절의 김영하를 그리워할 것이다나는 그가 누구인지 모르지만그가 그 소설들을 읽던 그때의 저 자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과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다후에 오직 두 사람을 기억할 누군가가 지금 이 시절의 자신을 애틋하게 되돌아보리라는 것도, ‘그 이후를 견디느라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몰랐던 이 시절이 그제서야 그에게 다시 살아지리라는 것도미리 조금은 알 것 같다.

 

그렇게 그들의 일상이 다시 시작되었다.(신의 장난, 265)


「이 시절을 두 번 - 김영하, 『오직 두 사람』」

『광화문에서 읽다 거닐다 느끼다』, 2018.06.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