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연성 by 현경

개연성

박서련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 -

 

문학평론가 황현경

 

단점부터 말하자이 이야기는 개연성이 떨어진다가족과 함께 평안북도 강계에서 서간도 통화현으로 이주한 이십 세 여성이 갓 혼인한 다섯 살 연하 남편을 따라 독립군에 가담한다독립운동 중 병을 얻은 남편이 죽자 서방 잡은 년이라며 시집에서 쫓겨나 수감되었다 풀려난 후 귀국해 평양에 위치한 평원고무공장에 취업한다임금을 감하하려는 공장주들에 맞선 노동자들의 파업에 가담한다파업이 실패로 끝나자 평양적색노동조합에서의 사상학습을 거쳐 다시금 파업 농성의 선봉에 선다경찰들의 진압으로 파업단이 재차 해산되자 을밀대 지붕에 올라가 체공 농성을 하다 체포되고옥중 단식을 벌이다 출옥한 후 다시 농성을 일으켜 임금 감하를 철회시키고적색노동조합 가담 사실이 문제가 되어 다시 투옥되고서도 단식 투쟁을 거듭하다 병보석으로 풀려났지만 끝내 병세가 악화되어 사망한다박서련의 제23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체공녀 강주룡(한겨레출판, 2018)의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당신더러 믿으라면 믿겠는가. 1901년에 태어나 삼십 년을 살다 간 한 여성의 전기적 사실에 허구를 더해 완성된 이 소설에 구태여 품지 않아도 될 것처럼 느껴지는 이 의문이 사실은 핵심이다엄연히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하나만 일어나도 기가 막힐 일이 연달아 일어”(152)날 수 있었는지가 저절로 설명되는 것은 아니니까소설의 답을 세 자로 요약하자면 강주룡이다아니이 정도로 설명해서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강주룡이 답이라고 말하기 위해 이 소설은 쓰였다주인공 없는 곳을 저 혼자 다닐 수 있어 일반적으로는 일인칭 화자보다 자유롭다고 여겨지는 삼인칭 화자로 쓰였음에도이 소설의 화자는 (강주룡의 사후를 그린 마지막 장을 제외하면한시도 강주룡 곁을 떠나는 법이 없다그렇게 초점이 내내 강주룡에게 맞춰진 결과 체공녀 강주룡은 일어난 일들을 (강주룡이) ‘일으킨 일들로 재해석하는 데 성공한다말하자면 이 소설의 개연성은 사건이 아니라 인물에 있다.

그래서도대체 강주룡은 누구인가그녀를 평양적색노동조합에 끌어들인 인텔리’ 정달헌은 싸우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197)고 요약했지만소설은 한발 더 나아가 누구로서 싸우는가와 무엇과 싸우는가를 섬세히 나누어 답한다후자를 먼저 살피면상대는 일제이거나 공장주로 대표되는 자본가들만이 아니다독립군 시절 중대장인 백광운 장군을 도와 중책을 수행하기도 했으나 다른 대원들은 은연중 그녀를 동지 이전에 간나이거나 부엌데기로 취급한다노동조합 결성준비 세미나에서는 한 명뿐인 여성으로 발언권을 얻자 불편한 공기가 흐른다대의를 위해 한데 모인 이들 사이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가해지는 차별과 혐오까지가 그녀에게는 싸움의 대상이다소설은 이 이중고가 그녀 자신이 더 독립군이 된다거나 더 노동자가 되는 식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근본적인 해답은 누구로서 싸우는가’ 하는 질문을 통해 찾아질 수밖에 없다시댁에서 가사를 돌보던 시절과 독립군의 일원이었던 시기를 거쳐 노동운동을 이끌기까지 그녀의 정체성의 중심에는 내내 여성이 자리한다앞서 언급한 몇몇 삽화와 함께 시대적 배경을 감안하자면 이는 분명 한계에 가까운 것이었을 텐데도 강주룡은 이를 극복하려 애쓰지 않는다애초부터 제 정체성의 핵심이 그것일진대 극복해야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하여 소설은 강주룡이 1부에서는 여성 독립군으로서, 2부에서는 여성 노동자로서 싸웠음을 거듭 강조한다이러한 지점은 여성이 각성을 통해 전사(戰士)가 되는 과정에서 차츰 무성(無性)의 존재로 변모하던 과거 노동소설 등의 한계를 아득히 뛰어넘는 것임은 물론이며동시에 최근 일군의 페미니즘 소설들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했던 전도된 피해자 중심주의에 대한 설득력 있는 대안으로 평가받아 마땅한 것이다.

이렇듯 이중 혹은 다중의 정체성을 통해 이중 혹은 다중의 억압과 싸우는 강주룡의 모습이 가장 선명히 드러나는 것은 2부 도입의 모단 껄’ 에피소드에서다강주룡은 모단 껄이길 꿈꾸지만실상 그녀에게 모단 껄이라는 것은 양장 차림으로 극장 구경을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등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그 이미지들을곧 그 사진들을 돌려보던 여공들을 좌우간 모단 껄은 학생 아니면 기생”(139)이라며 작업반장이 희롱했을 때 강주룡은 누가 나더러 모단 껄이 아니라 했다고 내가 정말 모단 껄이 아닌 것은 아니”(140)라고 생각한다이미지든 뭐든 제가 원하는 그것이 되겠다는 것제가 바라는 대로 살겠다는 것우리는 애써 나누어 보았지만 강주룡에게는 그 모든 정체성의 총체가 곧 자신이었을 터체공녀 강주룡은 그리 두꺼운 소설이 아니지만 그것을 통해 복원된 한 인간의 삶은, ‘더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싸워온 한 여성의 삶은 이렇게나 두껍다.

이런 소설은 내가 써야만 한다는 의무감 정도로는 쓸 수 있는 게 아닐 것이다누가 시켜서는 도저히 강주룡처럼 싸울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그 누구보다도 내가 잘 쓸 수 있는 이야기라고내 이야기라고그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정도는 되어야 쓸 수 있는 것 아닐까무례할진 몰라도 무리한 짐작은 아니리라아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그 시절 자기 자신으로 살기 위해 싸우다 간 한 여성의 삶을 지금 이 땅에서 펜을 쥐고 일하는 여성 노동자가 아니면 과연 누가 되살릴 수 있을까이 이야기와 이 작가가 만나서 이 소설이 탄생하게 된 것이 필연이라는 말이다그 만남이 하필 지금 이루어진 것도 우연이 아님은 물론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는 것도 내일이 아니라 당장 오늘이어야만 한다강주룡도이 작가도또한 우리도 더는 싸우지 않아도 될 날이 언젠가는 아마 올 것이다아니 반드시 올 거라고아니 반드시 온다고 바꿔 말하자체공녀 강주룡과 같은 소설이 쓰이고 읽히는 일들의 연쇄 끝에 개연적으로 합당한 결말은 오직 그거 하나뿐이니까.


「개연성 - 박서련, 『체공녀 강주룡』」

『기획회의』, 2018.08.20, 112-113쪽